강요배. 18년 6월.
2018년 6월 13일 instagram(bincent.kim) 작성
오랜만에 찾은 소격동. 역시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뤄왔지만 지난 2주 간 도저히 뭐라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단 집부터 나섰다.
학창 시절 때부터 사간동 초입의 갤러리 현대로 시작해서 금호 미술관, 지금은 프린트 베이커리로 바뀌고 청담동으로 이전한 선컨템포러리, 기무사 부지, 병원, 고문 등의 말들로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감돌던 지금의 국현 서울관을 끼고 걷다 보면 소격동으로 이어지며 나타나는 학고재, 그 뒤의 국제 갤러리까지. 왼쪽에 경복궁을 놓고 이 길을 걷다 보면 굳이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잔잔해진 수면 위에 조금씩 설렘이 이는 느낌을 받았다.
강요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곳 역시 학고재였다. 거친 자연을 담은 대담한 그림에 많이 매료 되었던 기억이 나고 그 이후에도 정식 전시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작품을 접했던 것 같다. 그 당시 파도가 일렁이는 그림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던 생각이 난다.
이번 전시에도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시원한 그림이 많았지만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른 그림들도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장독대, 보자마자 김지원 작가의 맨드라미가 떠올랐던 춘색(春色) 등 잔잔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있었다.
전시 제목의 상(象)은 코끼리를 의미하며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등의 이미지를 뜻하는 글자라고 한다. 상을 찾는다는 것은 실물에 대한 인상이 있고 그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인 심상이 있고 그것을 다시 추상으로 화폭에 옮기는 과정이라는 것인데 그러한 절차 속에서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은 오로지 작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도 세상과 소통하고 뉴스를 보고 책을 읽으며 객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물건이나 형태를 인지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후 다시 꺼내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주관과 사유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몇 년 전 리움에서 본 양혜규 작가의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에서의 코끼리는 “자연 생태계를 의미하고, 이로부터 괴리된 인간 윤리를 호소하는 매개적 존재”이며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자연을, 그리고 야생을 우리 주변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포괄적 사고 체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식견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회를 아우르는 거창한 의미의 코끼리보다 작가, 작품, 관객 속에서 소소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강요배 작가의 코끼리가 훨씬 좋다.
덧붙이면 그림 끝에 또박또박 쓴 서명도 너무 좋다.
이번주 주말까지 1부가 진행되고 그 이후 7월까지 “메멘토, 동백”이라는 주제로 2부가 계속될 예정인데 재밌게 본 영화 제목과는 별개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날 국제갤러리와 금호미술관도 갔었고 국현 서울관은 5시 5분에 들어가는 바람에 전시를 보지 못했던 일들도 있었지만 학고재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나머지 리뷰는 다음으로 미뤄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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