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센터에서 보낸 두 시간

부서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AS센터에서 보낸 두 시간

"단자만 고장났으면 4만원,

기판을 갈아야 하면 57만원입니다."


AS센터 직원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4만원과 57만원.

그 사이에는 수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분기점이 놓여 있었다.


내게는 십 년 된 노트북이 하나 있다.

개업 초기,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주고 샀다.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능이었고,

무게도 가벼워서 나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법정과 사무실, 카페와 집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문서를 작성했고, 밤늦게 판례를 검색했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뿐 아니라 기계에게도 공평했다.

점점 성능이 떨어져가는 이 녀석을 대신해

새로운 노트북을 구입했고

그 후 어느 순간부터 이 녀석은

뒷방 노인처럼 현역에서 물러났다.

잠들기 전, 이 노트북으로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다 잠이 드는 일이 많았으니

일종의 죽부인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충전이 되지 않았다.

어댑터도 바꾸고 케이블도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사설 수리점에서는 공식 센터로 가라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백업하실 내용 없으세요?"

직원이 갑자기 물었다.

왜 그러냐고 하니,

만약 57만원짜리 수리라면 하지 않는 게 맞고,

그러면 다시는 이 노트북을 켤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배터리가 20퍼센트쯤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백업하라고 했다.


이것 참.

무슨 임종을 각오하라는 말로 들렸다.


이미 은퇴한지 오래된 것이라

딱히 백업할 만한 자료는 없었다.


"데이터 삭제되어도 책임 묻지 않는다는 문서에 서명해주세요."

전자서명을 했다.


직원이 말했다.

"두 시간 내로 연락드릴게요. 4만원인지 57만원인지."


센터를 나오는데 문득 오래전 들었던 노래가 떠올랐다.

부서져가는 라디오에 관한 노래였다.


思春期に少年から 大人に変わる
道を探していた 汚れもないままに
飾られた行きばのない 押し寄せる人波に
本当の幸せ教えてよ 壊れかけのRadio

사춘기 때 소년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길을 찾고 있었지, 때묻지 않은 채로
꾸며진 갈 곳 없는,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가르쳐줘, 부서져가는 라디오여


노래 속에서 도쿠나가 히데아키(德永英明)

부서져가는 라디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묻고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 라디오에게.

그 라디오는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는 길을 함께 걸었고,

수많은 멜로디로 수많은 시대를 만들었다.

창밖 하늘을 볼 때마다 희미한 용기를 주었다.


내 노트북도 그랬다.

개업 초기의 불안한 시간들,

첫 의뢰인을 만나러 가던 날의 긴장,

밤늦게 혼자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에 이 녀석이 있었다.


검은 화면이 켜질 때마다 희미한 용기 같은 것이 생겼다.

갈 곳 없는 인파 속에서 길을 찾던 시간,

이 노트북은 내 옆에 있었다.


볼일을 보고 나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다시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가 넘었다.

어제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나 알 수 있을 거라고.


이 노트북이 나와 조금 더 함께 있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릴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나는 작은 기도를 했다.

기왕이면 조금만 더 함께 있을 수 있기를.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기를.


고작 기계일 뿐인데, 묘하게 가슴이 서늘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에게도,

기계에게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도 변했고, 세상도 변했고,

이 노트북도 변했다.


다만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만은

어디에도 백업되지 않은 채,

그저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려한 축제가 끝난 후 조용해진 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멀어지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느낌.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에게 묻는다.

부서져가는 것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오늘 아침, AS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57만원이었다.

나는 수리하지 않기로 했다.

십 년 된 노트북에 57만원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직원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폐기 처리하겠습니다."


알겠다고 했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서져가는 것들은 결국 부서지기 마련이니까.


https://youtu.be/C7QVaahn44A?si=CsenRQc3WRudnl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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