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의뢰인을 믿지 말라는 첫 스승의 말

싸움은 진실 위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처음 법조인의 길을 걷던 시절,

나의 첫 스승이신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의뢰인을 너무 신뢰하지 마.”

당시에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사람,

나에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 사람,

앞으로 함께 싸워야 할 사람을 믿지 말라니.

젊은 나는 그 말이 낯설고, 솔직히 불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직접 사건을 맡아보니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싸움은 정확한 진실 위에서 시작된다

변호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분쟁 중이다.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쪽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왜 문제가 생겼고, 우리 쪽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상대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싸움을 이어갈지, 멈추고 협상을 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건을 의뢰한 사람, '의뢰인'이다.


문제는 의뢰인이 이 중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거나, 민망해서 말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10억 원을 빌려줬는데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해달라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소송을 시작한다.

그런데 재판도중 상대방은 5억 원을 갚았다는 자료를 제출한다.

아무리 봐도 그 자료가 위조된 것 같지는 않다.

의뢰인에게 묻는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 받긴 했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도 왜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 인간이 너무 괘씸해서요.”라고 답하신다.


당연히 판결은 5억만 인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황을 의뢰인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이런 말을 한다.


“상담할 때는 전액 받아준다고 하지 않았냐.”라거나

"5억만 받을거면 내가 굳이 왜 돈을 들여서 변호사를 선임하냐"라고.


지금이야 저런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대처를 하지만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상담당시에는 당신께서 5억을 변제받았다는 사실을 말씀 안하셨지 않습니까?" 라던가

"몇 백만원 들여서 변호사 선임했다고 5억 받을 채권이 10억원으로 불어난다는게 말이 됩니까?"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그리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수임료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다.

(최근에는 저런 의뢰인의 사건은 수임하지 않고 있다)



변호사는 신이 아닙니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진행 중인 사건에서 의뢰인이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말씀하셨다.

물어보니 “창피해서 말 못했다” 혹은 “기억이 잘 안 났다”고 하신다.

그러면 소송 전략은 완전히 바뀌어야 하고, 이미 낸 주장이나 자료는 뒤엎어야 한다.


변호사는 신이 아니다.

과거의 당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의 편이다.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같은 편이 되어 싸우는 동료다.

그러니 숨기지 말아달라. 아픈 부분도, 부끄러운 부분도, 솔직히 말해달라.

비밀은 완벽히 보장할테니.


진단 장비가 부러운 이유

가끔은 의사들이 부럽다. 첨단 검사 장비가 있다.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부위에 문제가 있는지, 수치로 드러난다.

변호사에게도 그런 장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뢰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대출을 최대한 당겨서 반드시 구입했을 것이다.

의사인 동생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하건 하는데

그럴 때마다 동생은 웃으면서 말한다.

그게 있어도 완전히 정확하진 않아서 힘든건 매한가지라고.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럽다.



마지막 당부

사실 이 글은 오래전부터 꼭 한번 쓰고 싶었다.

'의뢰인들께 드리는 말씀' 뭐. 이런 제목으로 말이다.


저희는 당신의 편입니다.
부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부끄러워 마시고, 다 털어놓아 주세요.

우리는 자존심 있는 변호사들이고,

맡은 사건은 반드시 이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솔직한 진술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비밀은 철저히 지키겠습니다.


저희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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