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본질에 대한 소고(小考)
사무실에는 고속 스캐너가 있다.
업무상 문서를 전자화할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제본된 책을 스캔해야 할 일도 생겼고,
그래서 재단기까지 들여놓았다.
소위 말하는 '작두'다.
묵직한 날이 달린 이 기계는
두꺼운 책도 단번에 낱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처음에는 순전히 업무용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상한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책들,
읽고 싶지만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그 책들을 해체하고 싶다는 충동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전처럼 종이책을 자주 읽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진 탓도 있고,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운 상태에서
읽기가 불편한 탓도 있다.
반면 태블릿은 편하다.
화면 밝기를 조절할 수 있고,
글씨 크기도 마음대로 키울 수 있다.
어두운 방에서 별도의 조명 없이도 읽을 수 있다.
전자책이 있는 책은 전자책을 산다.
문제는 모든 책이 전자책화 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미 종이책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전자책으로 사는 일도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두 번 사는 셈이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가진 책을 직접 스캔하면 되지 않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책을 해체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내게 책은 신성한 것이었다.
책 위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으면 안 되고,
책장을 접으면 안 되고,
연필로 낙서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수십 년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책을 칼날 아래 놓고 등을 잘라내겠다니.
뭔가 금기를 어기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은 시험 삼아 해본 적이 있다.
재단하고 스캔한 뒤, 다시 원래 형태로 복원하고 싶어서
인근 대학가 복사집을 찾아갔다.
본드 제본을 부탁했더니 한결같이 거절당했다.
저작권 문제라고 했다.
내 책을, 내가 돈 주고 산 책을,
내가 다시 제본하겠다는데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그 뒤로는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그 충동이 고개를 든다.
외근이 잦아지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스캔해둔 책은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것.
태블릿 하나면 수십 권의 책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재판 시작 전 대기실에서,
어디서든 꺼내 읽을 수 있다.
종이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편리함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읽게 된다.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들을, 태블릿에 넣어두니
정말로 읽게 되었다.
이건 꽤 중요한 발견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책이란 무엇인가.
종이를 묶어서 표지를 씌운 물건.
그 안에 담긴 글자들.
그 글자들이 전달하는 생각과 이야기.
본질은 마지막 것이다.
종이와 잉크는 그것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릇에 집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책장에 꽂아두고 가끔 바라보면서,
읽지도 않으면서,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온 건 아닐까.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다. 장식용이 아니다.
아무리 멋진 양장본이라도 읽지 않으면
그건 종이 묶음에 불과하다.
며칠 전, 시험 삼아 몇 권을 재단했다.
스캔 후, 스프링 제본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품이 떨어진다.
책꽂이에 꽂아두기도 애매하고,
제목도 잘 보이지 않는다.
손에 들고 읽기는 편하지만,
보관하기에는 영 아니다.
주변에서 이걸 본다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책을 해체까지 해가며 읽어야 하나,
그냥 전자책을 사면 되지 않나, 혹은
그냥 종이책을 읽으면 되지 않나.
그런 반응이 예상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고이 모셔두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
오래된 관념에 사로잡혀
실제로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은 기울어져 있다.
책장 한쪽에는 스프링 제본된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재단기 앞에 서면 여전히 잠깐의 망설임이 있지만,
칼날이 내려가는 순간 그 망설임은 사라진다.
그리고 스캔된 파일이 태블릿에 저장되는 순간,
묘한 해방감 같은 것이 찾아온다.
소유의 본질은 사용에 있다.
그게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다.
물론 이 결론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수십 년간 익숙했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니까.
누군가는 책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 자신도 몇 년 뒤에는 후회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그 책들은 읽히게 될 테니까.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재단기 앞에 또 한 권의 책을 올려놓는다.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칼날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