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에 관하여
어제 저녁, 단골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았다.
벽에는 낡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몇 년을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날따라 눈에 들어온 그 액자 속 문구.
'Non mea, sed tua'.
주인에게 물으니 이탈리아 여행에서 사 온 것이란다.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라는 뜻이라고 했다.
1년 6개월 째. 아니 그 근원까지 따지자면 거의 4년의 시간.
어떤 결과를 기다리기 시작한 지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 결과가 내일 나온다.
화요일 오전 열 시.
평범한 하루의 시작 시간에,
내 삶의 한 매듭이 지어질 예정이다.
나는 특별히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예배당보다는
해변으로 달리러 가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성경의 한 구절이 자꾸 떠오른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 유명한 기도.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처음 이 구절을 들었을 때는
그저 신약성경의 한 대목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얼마전 부터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되뇌고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틀렸다는 판정을 받을까 봐 두렵다.
몇 년간 쌓아올린 신념의 성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어쩌면 처음부터
내가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저들도 각자의 '잔'을 들고 있겠지.
어떤 이는 가볍게 들이켜고,
어떤 이는 나처럼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다.
새벽에 바다로 나가던 때가 생각난다.
송정 해변의 찬물에 몸을 담그면,
처음엔 온몸이 거부한다.
도망치고 싶다.
따뜻한 이불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 차가움을 견디고 나면
어느 순간 물과 하나가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저항을 멈추고 파도에 몸을 맡기면,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지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다만 이번엔 내가 선택한 바다가 아니다.
상황이 만들어낸, 혹은
운명이 던져준 물살 속에 던져진 것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일들,
그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친구가 전화로 물었다.
"그래서 뭘 할 건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기다리는 거지."
기다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견뎌내야 하는 일.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모순.
어제 밤, 오래된 재즈 앨범을 꺼내 들었다.
빌 에반스의 'Peace Piece'.
평화를 노래한다지만,
그 안엔 팽팽한 긴장이 숨어 있다.
반복되는 왼손의 베이스 위로 흩어지는 오른손의 즉흥 연주.
예측할 수 없는 전개.
꼭 지금의 내 처지 같았다.
'Non mea, sed tua.'
여기서 '당신'은 누구일까.
신일 수도, 운명일 수도,
시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게 '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아닌 무언가에 나를 맡긴다는 것.
그게 체념일까, 지혜일까.
포기는 또 다른 선택이라고 들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포기는
선택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바람이 빈 곳을 채우듯,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난다.
이 기다림의 시간도, 불확실성의 안개도.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겟세마네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한다.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지만 동시에 안다.
결국 마셔야 한다는 것을.
해가 저문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내일도 해는 뜰 것이고,
나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의뢰인을 만나고, 직원들과 미팅을 하고
평범한 얼굴로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뜻을 접고 더 큰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
부서지지 않기 위해 유연해지는 것.
단단함이 아닌 부드러움으로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카페를 나서며 다시 한 번 그 액자를 본다.
'Non mea, sed tua.'
오늘 밤도 이 말을 품고 잠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 들어 올리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붙잡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매일 조금씩 해내고 있는 일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의 'Non mea, sed tua'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내 뜻이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내 뜻이 아니기에 계속될 수 있는 삶을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