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재능 — 똑똑한 뇌가 고민을 만든다
불안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배웠다.
불안하면 안 된다, 불안해하지 말라, 불안을 떨쳐내라.
그런 말들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불안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했다.
왜 이렇게 나약한가,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은가.
주변 사람들은 태평해 보이는데 나만 유독 예민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불안은 똑똑한 뇌의 부산물이라고.
저자에 따르면, 불안은 주로 전두엽에서 만들어진다.
전두엽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발달한 부위다.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고등 기능을 담당한다.
그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전두엽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산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대비책을 세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불안이 생겨난다.
다시 말해, 불안은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책에 따르면,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에게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고민이 사라지는 것이다.
언뜻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비극적인 상태다.
고민이 없으면 계획도 없고,
계획이 없으면 기억도 필요 없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사람에게
과거의 경험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어렵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내가 자주 느끼는 복잡한 생각들,
밤에 잠들기 전 머릿속을 맴도는 걱정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머리가 무거워지는 그 감각들이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었던 것이다.
나는 예민해서 고민이 많은 게 아니었다.
뇌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과도한 불안은 문제가 된다.
트라우마가 되거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이 전혀 없는 것도 위험하다.
동기부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한 실험이 인상적이었다.
도파민 뉴런의 반응을 연구한 실험이다.
원숭이에게 빛 신호를 보내고 먹이를 주는 실험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먹이를 받을 때 도파민 뉴런이 활발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신호의 의미를 학습한 뒤에는
먹이를 받아도 반응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신호와 먹이의 관계에 확률을 도입한 실험이다.
100% 먹이를 주거나, 전혀 주지 않거나, 혹은 50% 확률로 주거나.
도파민 뉴런은 확률이 50%일 때 가장 활발하게 반응했다.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이쪽도 저쪽도 아닐 때
가장 큰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뇌는 불확실성을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포츠나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
추리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패가 뻔한 경기는 재미없다.
결말을 아는 소설은 김이 빠진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손바닥 보듯 뻔한 삶은 뇌를 망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뇌에게는 영양분인 셈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플라세보 효과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통증 실험을 소개한다.
피험자의 손목에 열 자극을 주고 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다음, 진통제를 바르고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진통제에는 아무런 유효 성분이 없었다.
가짜 약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가짜 약을 발랐는데도 통각 경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속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이 실제로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꾸기 때문이다.
약을 발랐으니까 아프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통증을 차단한다. 마음이 통각까지 조절하는 것이다.
우울증에도 플라세보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의사가 "이 약은 상당히 효과적입니다"라며 가짜 약을 건네주면,
70%의 환자가 호전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지나친 책임감이나 초조함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나는 책을 읽으며 내 불안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들은 내가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불안은 적이 아니라 까다로운 동료였다.
다루기 어렵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불안 덕분에 나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실수를 줄이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