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아무도 없는 길

혼자 걷는 일에 대하여

새해 첫날 아침, 집을 나섰다.

일출을 보려던 건 아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서 낙엽 부스러기가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지난 일 년이 떠올랐다.




작년은 긴 한 해였다.

아니, 길었다기보다는 무거웠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내려놓았고,

어떤 것들은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내가 놓은 건지, 놓친 건지. 그 경계가 흐릿한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한동안 그 무게에 짓눌려 지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다가 잠이 안 오는 밤도 있었다.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다가 새벽을 맞은 적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겹겹이 쌓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게 있다.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해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너무 당연한 말인데,

막상 그걸 몸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산책로 옆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벤치였다.

앉아서 잠시 쉬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분홍빛이 번졌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울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새해 첫날에 원대한 포부를 밝히는 건 왠지 조금 창피한 일 같았다.

해마다 그런 다짐을 했고,

해마다 그 다짐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올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냥,

매일매일을 조금 더 성실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

쓰고 싶었던 글을 쓰는 것.

가끔은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습관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들이 쌓여서

결국 삶을 이룬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극적인 전환점 같은 건 실제 삶에서는 드물다.

대부분은 그냥 하루하루의 축적이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걸었다.

길 저편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보였다.

검은 털의 중형견이었다.

새해 첫날 아침에 개와 함께 나온 그 사람도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습관대로 나온 걸까.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해가 수평선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

일부러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봤다. 붉고 선명했다.

그걸 보면서 별다른 감회는 없었다.

그냥 해가 떴구나, 싶었다.

작년에도 해는 떴고, 올해도 해가 떴다.

그리고 내년에도 해는 뜰 것이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다른 곳에 쏟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 다른 사람들의 요구,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이제는 그 방향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다시 찾아야 할 시간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올해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


거창한 다짐이 아니었다. 그냥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혼잣말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 때로는 가장 진심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선언하는 순간, 다짐은 이상하게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새해의 햇살이 비쳤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달라졌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2026년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의 인생2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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