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습작] 나트랑 4. 트란푸(Trần Phú)

석 달 만에 다시 뛰는 아침

새벽 여섯 시에 눈이 떠졌다.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차 때문이겠지. 한국시간으로는 지금이 아침 여덟 시일테니.

창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았다.

회색빛 하늘.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에어컨이 낮게 돌아가는 소리도.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낯선 천장이었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내 방 천장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넓고 멋진 바다가 보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수평선이 흐릿했다.

몇 척의 어선이 멀리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러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석 달 만에 처음 꺼내는 운동화였다.

끈을 묶는 손이 어색했다.

예전에는 매일 아침 이 동작을 반복했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지금은 끈의 길이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조차 잠깐 망설여졌다.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따뜻했다. 1월인데도 반팔로 충분한 기온.

한국은 지금쯤 영하일 것이다.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아침.

그런 것들이 여기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호텔 앞 해안도로의 이름은 트란푸였다.


Trần Phú.

나트랑 해변을 따라 12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이 도로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불린다.

도로명은 베트남 독립운동가 쩐푸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초대 총비서.

스물일곱 살에 프랑스 식민정부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사람.

짧은 생이었지만 그의 이름은 이렇게 남아 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었다.

몸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백 미터쯤 지나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발이 지면을 차는 감각.

숨이 가빠지는 느낌.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지난 석 달 동안 나는 달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달릴 수 없었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체중이 백 킬로그램을 넘어선 뒤로는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이 차고, 무릎이 아프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밤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1킬로미터 지점에서 군부대 정문이 나타났다.

일 년 전에도 이 앞을 지나갔다.

그때는 친구와 함께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달리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달렸을 뿐이다. 숨소리와 발소리만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혼자다.

혼자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의 기분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달리면 되었다.

걷고 싶으면 걷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면 되었다.


2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도로 포장이 끊겼다.


공사 중인 구간이었다.

흙먼지가 일었고, 중장비가 멈춰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비포장 구간을 지나갔다.

발밑이 불안정했지만 조심하면 지나갈 수 있었다.

백 미터쯤 지나자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트란푸 거리는 그런 길이었다.


완벽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 끊기고, 공사 중이고,

상태가 좋지 않은 구간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 넘어가면 다시 연결된다.

마치 인생처럼.

나는 지금 그런 구간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길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3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쯤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바다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회색이던 수면이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아침을 파는 노점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쌀국수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커피를 내리는 냄새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4킬로미터.

숨이 많이 찼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석 달의 공백이 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된다.


5킬로미터 지점에서 돌아섰다.

언덕 위에 또 다른 군부대가 있었다.

철조망 너머로 초소가 보였다.

군인 한 명이 서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수월했다.


몸이 풀렸기 때문이기도 했고,

바람이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까 지나쳤던 풍경들이 반대 방향에서 다시 나타났다.

비포장 구간, 노점, 군부대 정문.

같은 것들인데 다르게 보였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시계는 일곱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로비에서 커피 냄새가 났다. 조식당 문이 열려 있었다.

몇몇 투숙객들이 벌써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방으로 올라가 땀에 젖은 셔츠를 벗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배가 많이 나오고, 얼굴이 부어 있었다.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10킬로미터를 움직였다.

중간에 많이 걷기도 했지만, 어쨌든 완주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쁜 소식도, 불길한 예감도, 아무것도.

그냥 달렸고, 돌아왔다. 그것뿐이었다.

끊긴 구간도 있었지만 다시 이어졌다.

트란푸 거리처럼.

내 삶처럼.


일 년 전 이곳에서 느꼈던

그 감각—좋은 일 뒤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온다는 확신—은 어디로 간 걸까.


아직 아침 여덟 시도 되지 않았다.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조식을 먹고, 수영을 하고, 책을 읽을 것이다.

저녁에는 해변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다시 달릴 것이다.

트란푸 거리를 따라. 끊긴 구간을 넘어서.


특별할 것 없는 하루.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내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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