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좌석 위에서 얻는 것
비행기가 이륙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책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 위로 펼쳐진 하늘은 끝이 없었다.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라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고요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이동하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무엇을 할지보다,
그곳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책을 펼치거나,
그냥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
그 시간이 좋다.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고향인 부산을 오갔던 시절.
그때는 주로 무궁화호를 탔다.
네 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비용을 아끼려 새마을호 대신 무궁화호를 택했고,
덕분에 이동 시간은 조금 더 길어졌다.
공부하다 지치면 불현듯 짐을 쌌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열차에 올라타 자리를 잡고,
창가에 기대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책을 읽기도 했고, 그냥 멍하니 있기도 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엉켜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됐다.
부산에 도착하면 며칠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다시 네 시간 반.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도 똑같이 책을 읽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됐다.
그때는 몰랐다.
이동하는 시간 자체가 일종의 의식이었다는 것을.
흔들리는 좌석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지금은 열차를 탈 일이 거의 없다. 부산에 살고 있으니까.
가끔 재판이 있으면 열차를 타기는 하지만
최근 영상재판이 가능해지면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오갈 이유가 거의 줄어들었다.
KTX가 생기면서 이동 시간도 두 시간 남짓으로 줄었다.
예전처럼 네 시간 반 동안 느긋하게 흔들릴 수 있는 열차는 더 이상 없다.
대신 비행기를 탄다.
다섯 시간.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비행기는 대략 그 정도 걸린다.
예전 무궁화호의 왕복 시간과 비슷하다.
우연일까. 아니면 몸이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좌석에 앉아 책을 펼친다.
창밖으로 구름이 흘러간다.
기내에서는 휴대폰이 무용지물이 된다.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닿지 않는다.
연결이 끊긴 몇 시간,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준비가 된다.
일상에 머물러 있으면 쉽게 무너진다.
생활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어느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떠난다.
반드시 먼 곳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이동하는 시간이다.
일상에서 분리되어 어딘가로 향하는 몇 시간.
그 시간 동안 흔들리는 좌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그냥 멍하니 있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목적지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관광지를 돌아보든, 호텔에서 쉬든, 크게 상관없다.
핵심은 그곳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비행기 안에서, 혹은 예전이라면 열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비행기가 착륙 준비에 들어갔다.
창밖으로 낯선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책을 덮고 안전벨트를 맸다.
다시 돌아갈 때도 똑같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다섯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
조금은 달라진 채로.
이동하는 시간은 그런 것이다.
어딘가에서 다른 어딘가로 옮겨가는 동안,
나 자신도 조금씩 옮겨간다.
무궁화호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비행기 안에서 그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