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0.
고백하자면, 나는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비사교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학창시절과 사회생활 초창기에는 친구도 만나고 모임에도 나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임들을 모두 정리했다. 골프도 그만두었고.
유일하게 나가는 모임이라곤 트라이애슬론 동호회 정도다.
자영업자로서 너무 폐쇄적으로 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그런 부분은 함께 일하는 친구(이자 사무장)에게 맡기고 있다.
뭐, 하여튼.
1.
어제 만난 친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유일하게 만나는 동창생이다.
학창 시절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는데,
우연히 연락을 주고받게 되면서 결국 지금까지 이어졌다.
신기한 인연이다.
그 친구를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2.
둘 다 살도 찌고 머리숱도 줄었다.
하지만 만나는 순간만큼은 중학생 때로 돌아가 웃게 된다.
소주 한 잔을 놓고 시작한 이야기는
사업 이야기(요즘 경기는 어떤지),
건강 이야기(무슨 약을 먹는지, 최근 어떤 일로 병원을 다녀왔는지),
자녀 이야기(자녀들이 어느 학교에 갔는지, 어디에 입대했는지),
부모님 이야기(건강하신지,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등으로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대화의 흐름은 늘 같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3.
몇 년 전부터 어머님이 치매로 치료를 받고 계신다.
지난주에는 어머님과 병원에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뵈었더니 증상이 더 악화된 느낌이었다.
병원을 오가고 치료를 받는 동안 보여주신 어머님의 행동에
개인적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 친구 어머님도 치매증상이 있으셔서 자기도 고민중이라는 말을 꺼내는게 아닌가.
부모님 편찮으신게 자랑도 아닌지라 말을 함부로 꺼내기도 그랬는데
분위기상 나 역시도 순순히 내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두 분의 증상과 행동이 꽤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리와 반응 또한 비슷했다.
지난 주에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들 역시 이 친구는 이미 경험했던 일이라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앞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머님을 바라봐야 하냐고.
그 친구의 대답은 '받아들이라' 였다.
어머님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그 증상이 기적적으로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질 것이고, 치료는 그 시기를 늦추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러니 어머니의 여러가지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인도 처음에는 어머님의 치매증상들, 특히 외부에서 행해질 경우에는 많이 창피하고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변사람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이해도 많이 해주더란다.
결국 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생기는 현상들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했다.
여러모로 참 고마운 조언이었다.
4.
개인적으로 '남들도 저렇게 하는데.. 나는..왜'하는 말을 별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은 '나'와 '남'은 다른 사람이고, 처해진 환경도, 어떤 것의 필요성도 다른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남들이 한다고 나도 해야한다는 식의 논리는 뭔가 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남'은 공통적인 부분도 많다. 일단은 같은 '인간'이고,
같은 국적, 같은 성별, 같은 나이, 같은 직업 등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에서 오는 '공통적인 경험과 지혜'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사람은 그 상황을 그럭저럭 이겨내었고, 그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런 것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이어지고 발전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해보면 '남들도 저렇게 하니까'라는 말 자체는
아주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사용하는 건 좀 그렇지만.
5.
뭐. 하여튼. 여러모로 위안이 된 저녁이었다.
반가웠다. 친구야.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