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볼대에서 발견한 것
수요일 저녁, 짝지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식사 후 곧장 소파에 눕는 습관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걸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그냥.
골목을 돌아다니다 당구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이 멈췄다.
당구.
오십 년 가까이 살면서 당구장에 간 횟수가 열 번도 안 된다.
잘 못하는 일은 시작조차 꺼리는 성격 탓이다.
사람들 앞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짝지가 하고 싶어했다.
나보다는 당구경력이 많은 모양이었다.
당구장 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이 몇 명 없었다.
포켓볼 테이블 앞에 섰다.
규칙은 대충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으니까.
큐대로 흰 공을 치고, 흰 공이 다른 공을 쳐서 구멍에 넣으면 된다.
단순하다.
짝지가 먼저 쳤다.
공이 구멍 근처에서 멈췄다.
내 차례. 큐대를 잡았다. 자세가 어색했다.
팔꿈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허리는 얼마나 숙여야 하는지 몰랐다.
대충 자세를 잡고 쳤다.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창피하지 않았다. 의외였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붉어졌을 텐데,
그날은 그냥 웃음이 나왔다.
다시 쳤다. 또 빗나갔다. 또 웃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공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구멍에 넣는 건 여전히 운이 좋아야 가능했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뭔가 감이 잡혔다.
큐대를 쥐는 손에 힘이 빠졌다.
공을 치는 타이밍이 조금씩 맞아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게임에서 이겼다.
상대가 짝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겼다.
뿌듯했다.
당구장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왜 여태 이런 걸 안 해봤을까.
못한다는 이유로 시작도 안 하고 피해왔구나.
요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무릎이 시큰거린다.
주 2회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치료비가 적지 않게 든다. 한 번에 십만 원이 넘는다.
예전 같으면 아까워서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통증을 몸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는 것.
방치하지 말고 관리하라는 경고.
적대적인 게 아니라 우호적인 신호라고 생각하니까 대응이 바뀌었다.
아프면 치료받는다.
당연한 일인데, 예전에는 그게 안 됐다.
참으면 낫겠지, 바쁘니까 나중에, 그런 핑계를 댔다.
그러다 더 나빠졌다.
이제는 아프다 싶으면 바로 움직인다.
일주일을 돌아보면 작은 것들이 쌓여 있다.
추운 새벽에도 밖으로 나갔다. 영하 팔 도였다.
나가기 싫었지만 나갔다.
루틴을 지켰다는 것 자체가 성취였다.
업무 중에 틈틈이 스트레칭을 했다.
이십오 분 일하고 오 분 쉬는 방식. 귀찮지만 지켰다.
열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던 날, 저녁에 허리가 아팠다.
다음 날 더 신경 썼다.
친한 친구가 선을 넘으려 할 때 한마디 했다.
예전에는 그냥 웃어넘겼을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만 감정이 쌓이면 결국 관계가 멀어진다.
차라리 그때그때 말하는 게 낫다.
어색했지만 했다.
대단한 일들이 아니다.
추운 날 밖으로 나간 것,
스트레칭 루틴을 지킨 것,
당구장에 들어가본 것,
불편한 말을 꺼낸 것.
하나하나 따지면 별것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이면 삶이 조금씩 바뀐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당구장에는, 다음에 또 가볼 생각이다.
가격도 얼마 안 하고, 허리 숙이고 팔 뻗는 동작이 나름 스트레칭이 된다.
잘 치게 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툴러도 일단 해보는 것.
아프면 바로 치료받는 것.
불편한 말을 미루지 않는 것.
추운 날에도 밖으로 나가는 것.
결국 다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