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에서 배울 수 없는 것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별일은 아니었다.
진행 중인 사건의 의뢰인이 또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했고, 그래서 생긴 문제를 들고 왔고,
내가 설명을 했고, 알겠다고 했다. 늘 같은 순서다.
그런데 오늘은 전화를 끊은 뒤에도 뭔가가 남았다.
화라고 하기엔 좀 다른 것이었다.
이 일을 십 년 넘게 하다 보면 생기는 감각이 있다.
사기를 칠 확률이 높은 사람,
빚을 갚지 않을 사람,
앞으로도 분쟁 속에서 살아갈 사람.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수산시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진열대 위의 생선을 보고 신선한지 아닌지를 구별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인의 눈에는 다 똑같은 생선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사기꾼은 차라리 명쾌하다. 의도가 있으니까.
허세, 과시, 근거 없는 친밀함. 패턴이 있고,
패턴을 알면 걸러낼 수 있다.
더 어려운 유형이 따로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악의가 없다.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분쟁이 따라다닌다.
의도가 없는데 결과가 나쁘다.
말을 해보면 금방 느껴진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빨리 움직여야 할 때 가만히 있고,
차분해야 할 때 급하게 나선다.
타이밍이 늘 반 박자 어긋나 있다.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한다. 하라고 하면 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들고 온다.
주변 사람의 말이나 출처 불명의 인터넷 글을 더 신뢰한다.
그러다 결국 안 되면 그제야 아, 그렇군요, 한다.
그리고 또 같은 순서가 반복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지친다.
돈을 돌려주고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같은 사무실의 다른 변호사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냥 다른 데 가보시라고 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일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그럴 수가 없다.
이런 분들의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저런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여유가 생기기 어렵다.
그리고 항상 억울해한다.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왜 자기만 이런 일을 겪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나쁜 의도 없이 살아왔는데 왜 이런 결과만 돌아오느냐.
그 물음 앞에서는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만약 이 사람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면,
진지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렇게 살면 앞으로도 꽤 피곤할 거라고.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은 없다.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
이 직업이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분야의 일을 오래 하면
그쪽으로 눈이 조금 밝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의사가 사람의 행동을 보고 건강 상태를 짐작하듯이.
어부가 생선의 눈만 보고 신선도를 알듯이.
이 일이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닌 게,
대부분 분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몸이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듯이,
일이 꼬인 사람이 우리를 찾는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눈이 길러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를 감지하는 눈이 길러진다.
유쾌한 능력은 아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물론 내 판단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작은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뭘 그렇게 잘 안다고.
하지만 대체로, 지금까지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맞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보다는 좀 씁쓸하다.
아까 그 전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요즘 맡고 있는 사건의 의뢰인이
앞서 말한 조건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분이다.
수임료를 돌려드리고 계약을 해지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건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그럴 수가 없다.
잠잠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한마디를 툭 던지는데,
하나하나가 묘하게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십 년 넘게 이 일을 했고,
이런 경우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끔은 마음이 흔들린다.
몇 번은 진지하게 화가 치밀었다.
참았다. 참는 것도 일의 일부다.
한번은 통화 중에 목소리가 올라간 적이 있다.
끊고 나서 후회했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화를 낸 건,
결국 나의 한계였다.
사무장에게는 다음부터 비슷한 유형은 계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가족관계가 어떤지, 결혼은 했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말하려 할 때도 듣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측은해질 것이고, 측은해지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막상 내 일이 되면 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남의 일에는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던 것들이,
자기 일이 되는 순간 흐려진다.
부끄럽지만 어쩌랴. 원래 자기 일과 남의 일은 다른 법이다.
3월이다. 원래 바쁜 달이다. 이것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운 사건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 다 지나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봤다.
그리고 아까 그 감정이 뭐였는지를 생각했다.
화는 아니었다.
저 사람도 꽤 힘들겠구나,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