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킨라빈스 31'이 일본에서는 40년 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쪽에게 개인적으로 사례를 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
"길 건너에 서티원 아이스크림이 있으니까, 아이스크림 사다 줄래요?
콘 베이스 더블에, 피스타치오를 먼저 담고 그 위에 커피 럼.
알았어요? 기억할 수 있겠어요?"
"콘 베이스 더블, 밑에는 피스타치오, 위에는 커피 럼."
하고 나는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도서관에서 나와 '서티원 아이스크림'으로 가고,
그녀는 내가 빌릴 책을 찾으러 안쪽으로 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중에서
나는 10대 때부터 무라카미 선생의 팬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 유명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꽤 읽을 만한 것이 있고
이 작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 작품은 구성이 좀 독특한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다가 어느 한 점에서 연결되면서 끝이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꽤나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1985년에 출간되었고,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92-93년 경,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 저 구절을 읽고 꽤 충격을 받아던 기억이 난다.
약 33년 전, 대한민국의 부산, 그 중에서도 낙후된 동네에 살던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경상도를 벗어난 적이 단 한번도 없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에게
'서티원 아이스크림', '콘 베이스 더블', '피스타치오', '커피 럼' 이라는 용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었다.
거기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 자체도 귀했던 시절이라
검색을 해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
그 후 나도 성인이 되고, 우리나라도 점점 발전하게 되어
200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저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저 책이 1985년에 출간되었으니
일본에서는 1985년,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벌써 '베스킨라빈스 31'이 있었구나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는 건
이런 식의 재미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아. 그리고 이 책의 2가지 이야지 중 '세계의 끝'에 대해서
하루키 선생이 그 뒷 부분을 이어서 집필해서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그게 바로 최근의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이 양반이 이런 식으로 새로운 작품을 내주시는 것은 너무 감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기 작품들보다는 그 이전 작품들을 더 좋아한다.
이전 작품들을 다 알다보니 후반기 작품들을 읽다보면
음.. 이건 000에서의 그 비유같네... 라던가... 이건 0000에서의 어느 부분과 비슷하네..
이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뭔가 좀 김이 빠지기 때문. 하지만 뭐
하루키 선생이 신도 아니고.. 나이도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도 그 자체는 훌륭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전작들과 비교해서, 조금 맛이 덜하다는 것일뿐.
8월의 마지막 날. 아주 오랫만에
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