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심] 남 돈 받아내기, 생각보다 복잡한 3단계 과정

채권압류의 진실: 돈을 받기까지의 긴 여정

압류하면 끝 ? 천만의 말씀 !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한 의뢰인이 찾아와 하소연했다.

"변호사님, 그 사람이 다른 회사에서 월급 받는다는데, 그거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자신 있게 답했다. "물론이죠. 채권 압류하면 됩니다."

의뢰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다음 달에는 제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는 건가요?"

그때 깨달았다.

아, 일반인들은 '압류'가 마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법원이 압류 명령을 내리면 자동으로 돈이 들어온다고 믿는구나.



장바구니에 담기, 결제, 배송 - 채권집행도 마찬가지!


그날 이후 나는 채권 압류를 온라인 쇼핑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듯,

압류한다고 해서 바로 돈을 받는 게 아니다. 결제도 해야 하고, 배송도 받아야 한다.

채권 압류도 마찬가지다. 압류, 현금화, 변제라는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돈이 내 손에 들어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요즘 실무에서는 이 과정을 대부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가압류만 해뒀는데요..." - 달라진 실무

작년 여름, 어느 회사 법무팀장이 상담을 왔다.

"변호사님, 우리가 거래처 계좌를 가압류해 뒀거든요.

이제 본안소송에서 이겼으니까 그 돈 받으면 되는 거죠?"

"가압류를 본압류로 전환하면서 추심명령도 함께 신청하셔야 합니다."

"아, 가압류가 자동으로 압류가 되는 건 아니군요?"

많은 기업들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가압류는 '임시 동결'이고,

승소 후에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전환해야 실제로 돈을 받을 수 있다.


요즘은 이 전환 과정에서도 압류와 추심명령을 동시에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그 법무팀장의 회사는 가압류해 둔 5억 원을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전환 신청했고,

한 달 만에 전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급여 압류: 가장 흔한 사례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 사장은 식자재 납품업체 대표에게 5천만 원을 빌려줬다가 떼였다.

그 대표가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의 임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즉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다.


우리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

압류 대상: 채무자가 물류회사에서 받을 급여와 상여금

신청 내용: 위 채권을 압류하고, 동시에 우리가 직접 추심할 수 있게 해 달라


일주일 후 법원의 결정문이 나왔다. 물류회사 인사팀에 전화했다.

"법원 결정문 받으셨죠? 이제 그분 급여는 저희에게 주셔야 합니다."

인사팀 담당자는 당황했지만, 법원 서류를 확인하고는

다음 달부터 급여 일부를 우리 의뢰인 계좌로 송금했다.



임대보증금 압류: 타이밍이 생명

또 다른 사례.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 원장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했다.

그 동업자가 해운대에 얼마 전 새로운 사무실을 임차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보증금이 1억 원이라고 했다.


"변호사님, 저 보증금 압류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으로 갈까요?"


앞서 말한 추심명령은 위 보증금 채권에 대하여

나 이외의 다른 채권자의 압류가 있을 경우(이를 '압류의 경합'이라 한다)

1억 원의 보증금을 다른 채권자와 채권액 비율로 나눠 가져야 한다.


반면 전부명령은 그 채권 자체를 통째로 넘겨받는 것이다.

1억 원의 보증금 반환채권을 박 원장이 모조리 가져가는 셈이다.

다만 리스크가 있다. 만약 건물주가 보증금을 못 돌려주면, 박 원장도 돈을 못 받는다.


박 원장은 고민 끝에 추심명령을 선택했다. 안전한 선택이었다.

6개월 후 그 동업자가 사무실을 빼면서, 우리는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예금 압류: 속도전의 세계

은행 예금 압류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한 건설업자가 공사대금 2억을 못 받았다.

발주처 대표가 여러 은행에 예금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주요 5개 은행을 대상으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동시에 신청했다.

각 은행별로 청구금액을 나눠서:

A은행: 5천만 원

B은행: 5천만 원

C은행: 4천만 원

D은행: 3천만 원

E은행: 3천만 원


결과는?

A은행에 3천만 원, C은행에 2천만 원이 있었다.

즉시 추심해서 5천만 원을 회수했다. 전액은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압류: 의외의 보물창고

병원이나 약국을 운영하는 채무자라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을 돈이 있다.

한 의뢰인이 성형외과 원장에게 1억을 빌려줬다가 못 받고 있었다.

"그 사람 병원은 잘 되나요?"

"네, 환자가 꽤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을 보험급여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다.

한 달 후, 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압류된 금액을 공탁하겠습니다. 다른 채권자들도 압류했거든요."

아차, 우리만 노린 게 아니었다.

세무서, 다른 채권자 3명이 이미 압류해 둔 상태였다. 결국 배당절차를 거쳐 3천만 원만 받을 수 있었다. <br>


매출채권 압류: 기업 간 거래의 묘미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최 사장은 납품업체 대표에게 속았다.

그런데 그 납품업체가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달 대형마트에서 5천만 원씩 받는대요."

"좋습니다. 그 매출채권을 압류하죠."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다.

대형마트 구매팀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법원 결정문을 보고는 협조적으로 나왔다.

매달 납품대금을 우리 의뢰인에게 직접 지급하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전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실패 사례: 전부명령의 함정

모든 일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앞서 '임대보증금' 사안에서 잠시 설명했던 전부명령의 위험성에 대해서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한 의뢰인이 채무자의 퇴직금 5천만 원에 대해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했다.

전부명령은 그 채권을 통째로 넘겨받는 것이다.

결정이 나왔고, 이제 그 퇴직금 채권은 의뢰인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두 달 후, 그 회사가 부도났다. 퇴직금을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부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원래 채권(의뢰인이 채무자에게 가진 채권)은 이미 소멸한 상태.

다른 재산을 압류할 수도 없게 되었다.

"추심명령으로 했어야 했는데..."

의뢰인의 한숨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래서 '공무원의 퇴직금' 등과 같이 출처가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전부명령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경쟁자들: 다른 채권자와의 싸움

가장 스트레스받는 순간은 다른 채권자들이 나타날 때다.

한 번은 채무자의 전세보증금 2억을 압류했다.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으로 깔끔하게 처리하려 했는데, 전세 만기가 되자 줄줄이 채권자들이 나타났다.

"저도 압류했습니다." "저희가 먼저입니다." "세무서도 압류했어요."

결국 법원에서 배당절차가 진행됐다.

2억 중에서 우리 의뢰인이 받은 건 6천만 원. 나머지는 세무서와 다른 채권자들이 나눠 가졌다.


현실적인 조언들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몇 가지:


첫째, 요즘은 압류와 추심(또는 전부)명령을 동시에 신청한다.

굳이 따로 할 이유가 없다. 시간도 돈도 아낄 수 있다.


둘째, 추심명령이 안전하다. 전부명령은 한 방에 끝낼 수 있지만 리스크가 크다.

특히 제3채무자(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신용도가 불확실하면 추심명령이 낫다.


셋째, 속도가 생명이다. 다른 채권자보다 하루라도 먼저 압류해야 한다.

특히 예금이나 급여는 경쟁이 치열하다.


넷째, 정보가 힘이다.

채무자가 어디서 돈을 받는지, 어느 은행을 쓰는지, 어떤 재산이 있는지.

이런 정보 없이는 압류도 불가능하다.


결론: 복잡하지만 필요한 절차

얼마 전, 오랜만에 처음 그 의뢰인을 만났다. 급여 압류로 천천히 돈을 받아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압류하면 바로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이제 알겠어요.

압류는 시작이고, 추심까지 해야 진짜 돈을 받는 거네요."

맞다. 채권 압류는 마법이 아니다.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 - 이런 복잡한 이름의 절차들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신중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받아내는 일. 쉽지 않다.

하지만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 법은 그 길을 열어준다.

복잡하고 때로는 답답하지만, 그래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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