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이 가르쳐준 인생의 역설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틀렸다. 적어도 운동에 관해서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단순했다.
"운동을 하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
당신은 애초에 살이 찌지 않는 마른 체형이셨기에,
어머니를 닮아 살이 잘 찌는 체질인 아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늘 운동하라고 하셨지만, 교육 문제에서 아버지의 결정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체육 시간마저도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며 자랐다.
운동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캠퍼스에 나처럼 뚱뚱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음을.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때 충분히 운동을 해서 건강하고 날씬했다.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방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운동이 쉬울 리 만무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대에서 축구를 처음 해봤다.
당시는 구타가 남아있던 시절이라, 축구를 못한다는 이유로 이등병, 일병 때 꽤 많이 두들겨 맞기도 했다.
제대 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수영장도 등록해보고, 헬스장도 다녀봤지만 늘 중도 포기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풀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술까지 더해졌다. 건강이 좋을 리 없었다.
40대가 되자 이 모든 것이 질병과 건강 악화로 돌아왔다.
어느 날, 정말 이러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박함이 나를 움직였다.
정확히 2021년 12월 30일. 한 친구를 찾아갔다.
'돈은 원하는대로 줄테니,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호기롭게 부탁했다.
"돈은 안 받을 테니 철인3종 하자."
친구의 제안은 황당했다.
달리기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자전거는 그저 탈 줄 아는 수준이었고, 수영은 늘 중도 포기한 기억뿐이었다.
그런 내가 철인3종이라니.
부모님은 진지하게 "그러다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시작했다. 반강제로 끌려다니며.
철인3종 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때, 예상대로 나는 꼴찌였다. 거의 매번 그랬다.
처음에는 몹시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결승선 근처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꼴찌인 나를.
그들은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응원했다.
"끝까지 가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너무 힘들어 걷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누군가 달려와 음료수를 건넸다.
어떤 이는 주로 밖에서 나와 같이 달려주기도 했다.
마치 내가 1등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1등보다 더 열렬하게 응원했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끝까지 완주했다.
결승선을 통과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진심이 담긴 축하였다.
누구도 내 등수나 기록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존경이 그들의 눈빛에 담겨 있었다.
살면서 꼴찌를 하고 이렇게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무언가 달라졌다. 운동을 못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 것도 괜찮았다. 나는 원래 못하니까. 애초에 못하니까.
역설적이지만, 이 인정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해온 것들, 스스로 조금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는 못하면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지만 운동은 달랐다. 애초에 기대치가 없으니 부담도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원칙은 확고했다. 운동을 안 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는 사실.
그래서 못해도, 늦어도, 재미없어도 계속해야 한다는 것.
요즘 수영장에서 접영을 배우고 있다. 역시나 실력이 빨리 늘지 않는다. 가끔은 답답하고 짜증도 난다.
강사님이나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반쯤 장난으로 놀리기도 한다.
"아직도 그것밖에 못 가요?" "팔다리가 따로 노네요."
과거의 나였다면 상처받고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웃으며 넘긴다.
그리고 다음 날도 수영장에 나간다.
놀라운 건, 정말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미세하게, 달팽이 속도로. 하지만 분명히 늘고 있다. 폼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간다.
철인3종 대회에서 받은 응원을 종종 떠올린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
"포기하지 마라."
"Keep going."
"끝까지 가라."
구령을 붙여가며 같이 달려주던 사람, 음료수와 파워젤을 건네주던 손길, 뜨거운 박수.
그들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어떤 이는 빠르고, 어떤 이는 느리다. 나는 운동에 있어서는 느린 사람이다. 그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편해졌다.
빨리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니, 역설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잘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이제는 나의 강점이 되었다.
작은 발전에도 기뻐할 수 있다. 어제보다 1미터 더 수영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다 언덕에서 내려 걷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면 그날은 승리한 날이다.
10킬로미터를 뛰다 걷지 않고 완주했다면 개인 신기록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니까. 나의 경쟁자는 어제의 나뿐이다.
그리고 어제의 나는 늘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오늘도 접영 연습은 힘들었다. 25미터를 가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여성분들이 나보다 더 부드럽고 빠르다.
웨이브라는건 아예 먼 나라 이야기 같고, 출수킥은 아예 어떻게 차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내일도 수영장에 갈 것이다. 모레도 갈 것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언젠가는 접영으로 100미터를 갈 수도 있을 것이다.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철인3종 대회의 꼴찌였던 내가 완주할 수 있었듯이.
그날의 박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꼴찌에게 주어진, 가장 뜨거웠던 박수.
그것은 등수가 아닌 포기하지 않는 정신에 대한 찬사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운동한다. 못해도, 늦어도, 부끄러워도. 끝까지, 꾸준히.
이것이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 운동을 계속하는 방법이다.
못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
철인3종이 내게 가르쳐준 인생의 역설이다.
내일 수영장에서 또 헤맬 것이다. 접영이 여전히 서툴 것이다.
그래도 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