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무실에서 시작된 인연, 법정에서 끝난 사랑
※ 본 글은 실제 판례(대전지방법원 2019가단111605)를 참고하였으나, 당사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일시, 장소, 금액 등을 변경하여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2018년 4월, 한 지방도시의 부동산 중개사무실.
'M부동산' 대표 김모씨(이하 원고)는 3개월 전부터 함께 일하던 직원 이모씨(이하 피고)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사무실에서 시작된 인연은 달콤한 사랑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1년 4개월 동안 연인으로 지냈다.
하지만 2019년 8월 이별 후, 그들은 법정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랑이 식은 자리에 남은 건 1억 8천만 원이 넘는 금전 문제였다.
사건의 발단은 피고가 2018년 2월 한 상가를 11억 5천만 원에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피고는 계약금 3천만 원을 지급하고, 5억 5천만 원의 담보대출과 4억 2천만 원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승계하기로 했다.
그러나 매달 내야 하는 대출 이자가 부담이었던 것일까. 피고는 곧 연인이 된 원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원고는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총 78차례에 걸쳐 8,200만 원이 넘는 돈을 피고에게 송금했다.
매달 220만 원에서 280만 원씩 정기적으로 보내는 돈도 있었고,
S조합 대출 이자를 대신 납부해주는 돈도 있었다.
원고는 이 모든 돈이 '대여금'이라고 주장했지만, 피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연인 관계가 11개월째 지속되던 2019년 3월 15일. 원고는 피고로부터 차용증 한 장을 받았다.
차용증에는 "S조합 대출금 이자를 원고로부터 지원받은 것에 대해 차용하였으므로 상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변제 시기는 '원고가 상환요구한 날로부터 7일 이내'로 명시되어 있었다.
훗날 법정에서 피고는 이 차용증이 원고의 강요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이 차용증 한 장이 결국 2,950만 원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2020년 6월,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가 청구한 금액은 무려 1억 8,200만 원. 여기에는 송금한 8,200만 원, 원고 명의 신용카드 사용액 2,450만 원, 그리고 상가 매매 잔금 대납분 7,150만 원과 이자 400만 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원고는 2020년 피고를 사기 혐의로 형사고소했지만, 검찰은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원고는 S조합 대출 이자와 신용카드 대금만을 고소 내용에 포함시켰을 뿐,
나머지 송금액은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원고가 다른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한 진술이었다.
피고가 원고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한 사건(역시 혐의없음 처분)에서 원고는 "2018년 4월부터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5월부터 매월 생활비로 220만 원씩 지급했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2022년 4월 15일, 지방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용(인정)된 청구:
S조합 대출 이자 명목으로 송금된 2,950만 원 :
- 차용증의 존재, S조합 계좌로의 직접 이체 확인
(2) 기각된 청구들:
1) 나머지 송금액 5,250만 원:
- 매달 정기적으로 송금된 점, '급여'로 명시된 송금 내역, 형사고소 시 제외한 점 등을 고려해 급여로 판단
2) 신용카드 사용액 2,450만 원:
- 연인 관계 기간 동안 사용, 이별 후에야 변제 요구한 점 등을 고려해 증여로 판단
3) 상가 매매대금 7,150만 원:
- 원고가 실제로 지급했다는 증거 부족
결국 원고가 청구한 1억 8,200만 원 중 단 2,950만 원만이 대여금으로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연인 사이에 오간 금전이라도 대여 사실을 주장하는 쪽이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최근 10년 사이 연인 간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 90배가량 폭증했다는 통계가 있다.
2013년 2건에 불과했던 관련 판결이 2021년에는 210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MZ세대들이 "뚜렷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이별 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320500144)
이 사건은 연인 사이의 금전거래가 얼마나 복잡한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차용증' 같은 서류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법원은 "연인관계에서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증거 없이는 대여금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고와 피고, 두 사람은 한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사랑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은 2,950만 원과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두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되었다.
법원은 피고에게 연 12%의 지연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사랑이 끝난 자리, 남은 것은 차가운 판결문과 숫자들뿐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큰 금액이 오갈 때는 차용증이나 계약서 작성이 필수
카카오톡 대화, 문자메시지, 송금 시 메모 등도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음
연인 관계 중 오간 돈은 '증여'로 추정되기 쉬움
대여금임을 주장하려면 명확한 증거가 필요 (차용증, 이자 약정, 변제 기한 등)
이별 후에야 갑자기 돈을 요구하면 증여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음
매달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송금한 경우, 특히 고용관계가 있었다면 급여로 판단될 수 있음
송금 시 용도를 명확히 표시하는 것이 중요
형사고소 내용과 민사소송 청구 내용이 다르면 신빙성이 떨어짐
처음부터 일관된 주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은 2,950만 원은 차용증이 있었던 부분
간단한 내용이라도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