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없지만.. 그냥 단편소설 흉내라도 한번 내어보자..
제인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산 있는 독신 남자는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진리이다."라고.
이 논리에 따르면 나는 아내가 필요 없다. 재산이 없기 때문에.
10년의 혼인 기간 동안 나는 모든 수입을 전처에게 다 가져다줬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이었다.
어디에 썼는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남은 재산마저 판사는 사실상 전처가 모두 갖도록 했다.
“너는 의사잖아.”
판결문에 적힌 문장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변호사를 잘못 써서 그런가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항소를 포기했다.
결혼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빈손으로 8평짜리 원룸에서 새로운 독신 생활을 시작했다.
최소한의 직원들만 두고 병원 규모를 줄였다.
혼자 살 수 있을만큼만 벌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내 삶에는 묘한 공백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여자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결혼 경험이 없는 독신녀였다.
그녀는 내심 법적인 혼인을 바랐다.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싶어 했고, 친구들을 불러 성대한 결혼식을 열고 싶어 했다.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고, 신혼여행을 가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
그녀의 꿈은 너무도 단순하고, 그래서 더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시는 아픈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결혼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상처였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자주 다퉜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졌다.
반복은 지치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끝내 손을 놓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꿈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이해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그녀의 눈빛을 외면할수록 내 안의 상처가 도드라졌고,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수록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었다.
웨딩드레스가 걸린 쇼윈도 앞에서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나는 그대로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발끝이 자꾸 무거워졌다.
돌아설까, 그대로 갈까.
대답하지 못한 채, 나는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