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사랑한다는 것, 아모르파티
지방재판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을 사려는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귀를 사로잡았다.
'아모르파티'.
중독성 있는 리듬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인생이란 붓을 들고서 무엇을 그려야할지....."
음.. 단순한 가요인 줄 알았는데 가사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
피곤했던 몸이 음악에 맞춰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휴게소를 나서며 궁금해졌다. 아모르파티가 대체 무슨 뜻일까?
검색해보니 라틴어였다.
영어로는 'Love of fate', 운명에 대한 사랑.
철학자 니체가 즐겨 쓴 개념이라고 했다.
(세상에. 이 노래가 이렇게 심오했다니. 뭐. 하여튼)
여기서 운명이란 단순히 좋은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통과 실패, 삶의 불합리함까지 모두 포함한다.
중요한 건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긍정하고 사랑하며 맞서는 자세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운명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다.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한 뉘앙스가 불편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바꿀 수 있고
운명 따위는 없다고 믿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세상은 의지와 노력으로 충분히 개척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 존재 여부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운명이라 부르는 것들,
즉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사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갑작스러운 질병, 예상치 못한 이별, 계획하지 않았던 변화들.
젊을 때는 이런 일들을 모두 극복의 대상으로만 봤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받아들여야 할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역시 하나의 힘이라는 것을.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왜 하필 그 친구에게, 왜 이렇게 일찍. 질문은 끝이 없었다.
답은 없었다. 그저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다.
좋은 일은 감사하게, 힘든 일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맞서는 것.
원망과 후회에 시간을 쓰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아모르파티’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이 단어를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어졌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건,
삶의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 단순한 노래 한 곡이 나에게 심오한 철학 공부를 선사한 셈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후 이어폰을 끼고 다시한번 ‘아모르파티’를 들어본다.
노래가 주는 에너지는 물론, 그 뒤에 담긴 깊은 메시지가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