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인과관계라는 이름의 환상

며칠 전 전남 구례에서 열린

아이언맨 대회에 서포터로 다녀왔다.


비를 맞으며 10시간 넘게 주로에서 응원을 했고,

그 대가는 며칠간의 몸살감기와 밀린 업무였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한 일은

분명 의미 있었지만,

그것과 몸살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의미 있는 일을 했으니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어린 시절의 나는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면,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하다면,

내가 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마땅히 인정받아야 하고

모두가 그것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은 이상해 보였고,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들은 모순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것과

타인에게도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타인이 그것을 수긍하느냐,

협력해야 하느냐도

역시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이는 법률적 판단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상대방이 먼저 나를 때렸다고 해서

그 사람을 때리면,

나 역시 폭행죄로 처벌받는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 사람이 먼저 때렸다'라는 사실과

'내가 때렸다'라는 행위는 별개다.

재판에서는 일반인의 관점보다 다소 엄하게 이를 구분한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처음 이런 원칙을 배울 때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왜 먼저 때린 사람과 반격한 사람을 똑같이 보는가.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실은 이와 같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연결고리의 상당수는,

사실 우리의 일방적인 믿음이거나 기대일 뿐이다.



Billy Joel의 'Vienna'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Dream on, but don't imagine they'll all come true."


꿈을 추구하되,

그것들이 다 이루어질 거로 생각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이 말이 불만스러웠다.

꿈을 추구하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하지만 '꿈을 추구하는 것'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별개다.

저 노래가사처럼.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참 많다.

'열심히 노력한다'와 '성공한다'가 별개인 것처럼.

'좋은 사람이다'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가 별개인 것처럼.

'진심을 다한다'와 '그것이 전해진다'가 별개인 것처럼.


물론 이것들이 전혀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확률을 높이는 요소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수학 공식처럼

'A를 하면 반드시 B가 된다'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이런 사고는 의욕을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왜 노력해야 하나.

내가 옳은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뭐 하러 옳게 살아야 하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내 경우도 그런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이 사실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부분이 있다.


결과를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언맨 대회를 다녀온 대가로

며칠간 몸살을 앓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일을 했다'라는 것과

'몸이 아프다'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둘 사이를 억지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

의미는 의미대로 간직하고,

몸살은 몸살대로 치료하면 그만이다.


의미 있는 일을 했으니,

보상으로 건강해야 한다거나,

몸이 아프니 그 일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동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각각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과정을 즐기고,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인정받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와도 담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믿어온 많은 인과관계는,

사실 인과관계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기대'였을 뿐이다.


그 기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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