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도에 대하여
법원 복도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서면을 작성하고 있다.
노트북을 가져올까 망설이다가
무거울 것 같아 그냥 나왔는데,
생각보다는 불편하지 않다.
음성인식 기능을 켜고 중얼거리듯 말하면
화면에 문장이 차곡차곡 쌓인다.
손가락 끝으로 몇 글자를 고치고, 문장을 다듬는다.
이런 작업을 휴대폰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요즘 밥솥 앞에 서 계실 때가 많다.
치매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지만,
그 앞에서만큼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조용히 웃으신다.
당신의 어린 시절, 시골집 아궁이에서는
마른 솔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지폈다고 했다.
연기를 피해 부채질을 하고,
불길이 고르게 타오르도록 장작을 조절하는 일.
그것이 어린 어머니의 일과였다.
산에서 나무를 해 오는 것도,
쌀을 일어 가마솥에 안치는 것도 모두 당신의 몫이었다.
그 뒤로 세상은 달라졌다.
아궁이는 연탄곤로가 되었고, 다시 등유곤로로 바뀌었다.
이윽고 가스레인지가 부뚜막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기밥솥이 등장했다.
버튼 하나로 밥이 지어지는 시대.
'삐' 소리가 밥이 다 됐음을 알려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신다.
과거에는 밥 한 끼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밥솥이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물건인지.
언제나 감동한 듯한 목소리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이신다.
"참, 지금까지 살아온 게 한편의 꿈 같구나."
95년, 군에 입대했다.
부대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는
구형 타자기에 먹지를 끼워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등사기를 돌리는 일도 흔했다.
물론 그때도 컴퓨터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대장 이상급 보고용 서류를 만들 때나 쓰는 귀한 물건이었다.
97년 복학했을 때,
학교에는 '전산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과제를 하려면 전산실 이용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노트북을 가진 학생은 거의 없었다.
통신기기는 또 어떤가.
내 이십 대 초반은 '삐삐'의 시대였다.
전역 후 전설의 '시티폰' 시대를 거쳐 휴대폰 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삼십 대 중반쯤, 손안의 작은 컴퓨터라 할 만한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LP판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다시 CD로,
그러다 mp3를 거쳐 이제는 스트리밍의 시대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하려 레코드 가게를 순례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수십 년 전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어머니 세대만이 아니라
나 역시 꽤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건너온 셈이다.
법원 복도는 여전히 조용하다.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니 작성한 서면이 거의 완성되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나도 언젠가 어머니처럼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하게 될까.
"살아온 인생이 한편의 꿈 같구나"라고.
그 말 속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감사일까, 허무일까, 아니면 그저 담담한 받아들임일까.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한다.
때로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숨이 찰 때도 있지만,
돌아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휴대폰 화면을 끄고 복도 창밖을 바라본다.
오후의 햇살이 복도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디선가 '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밥이 다 됐다는 신호. 아니면 시간이 또 한 칸 흘러갔다는 알림.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한편의 꿈.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길고, 생생하고, 때로는 놀라운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