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에 관하여
가끔 이런 상황을 상상해본다.
나는 지금 바다에 빠져 있다.
수온은 차갑다. 체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육지는 그리 멀지 않다.
수영을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백 미터쯤 될까.
문제는 내 손에 쥐어진 황금덩어리다.
이 황금은 내가 수십 년간 찾아 헤맨 것이다.
이것을 팔면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아니, 편안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호화롭게, 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황금을 쥔 채로는 수영을 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체온은 계속 떨어진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황금을 쥐고 죽거나,
황금을 버리고 살거나.
나는 아마도 황금을 버릴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황금도 의미가 없으니까.
살아야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생존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 황금을 바다에 떨어뜨리는 순간의 심정은 어떨까.
수십 년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눈앞까지 왔던 부귀영화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황금의 무게를 느끼며,
나는 분명 무언가를 토해낼 것이다.
비명일 수도 있고, 한숨일 수도 있고, 그저 침묵일 수도 있다.
뼈가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살이 찢어진다는 표현도 모자란다.
그냥, 아프다. 엄청나게.
실제 삶에서도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살 수 있는 상황.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집착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계속 쥐고 있으면 가라앉는다.
물속으로, 깊은 곳으로.
사람들은 안다. 머리로는 안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손이 펴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굳어 있다.
수십 년간 쥐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런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손을 꽉 쥐는 연습은 평생 해왔다.
움켜쥐고, 붙잡고, 지키는 일.
하지만 손을 펴는 연습,
떨어뜨리는 연습, 보내는 연습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작 그 순간이 오면, 손가락이 굳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동작임에도.
논리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어제 늦은 오후, 사무실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이야기를 듣고, 차를 권하고, 휴지를 건넸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창밖으로 해가 졌다. 어둠이 찾아왔다.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말했다.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