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의 반란

이유 없이 두려울 때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다.


그저 눈이 떠진 것뿐인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무언가 큰 일이 곧 벌어질 것처럼 온몸이 긴장한다.



침대에 누워 하나하나 따져본다.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가? 없다.

처리하지 못한 급한 일이 있는가? 없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논리적으로 계산해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 막연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얼마 전 우연히 본 글에서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편도체라는 것 때문이라고 했다.


뇌 속 어딘가에 있는, 아몬드만 한 크기의 작은 부분인데,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시킨 장치라고 했다.


그런데 이 편도체라는 게 문제다.


실제 위험이 없어도 경보를 울린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머리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몸은 긴장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걱정할 일이 없는데,

가슴은 두근거린다.


마치 운전석에 편도체가 앉아 있고,

나는 조수석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다.



그 글에서 재미있는 실험 이야기도 있었다.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뱀이 든 상자를 주고,

가까이 둘지 멀리 둘지 선택하게 했다고 한다.


무서워도 용기 내서 가까이 두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뇌를 보니,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더라는 것이다.


그 부위가 편도체의 과민 반응을 누그러뜨린다고.



결국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편도체를 달래야 하는데,

이게 말이 안 통한다.


"걱정하지 마"라고 아무리 속으로 외쳐봐도 소용없다.

편도체는 논리를 모른다.

몸의 신호로만 소통한다고 했다.


그래서 천천히 깊게 숨을 쉬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호흡이 느려지면 편도체가

'아, 위험이 지나갔구나' 하고 진정한다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는 것도 좋다고.

뇌는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구별 못 한다더라.



최근 좀 빼먹긴 했지만

얼마전까지 새벽에 수영을 하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어둠 속을 달릴 때는

페달 밟는 것에만 집중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호흡과 동작에만 신경 쓴다.

그 시간만큼은 단순하다.


하지만 수영장 밖은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걱정이 고개를 든다.

내일 만날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나이가 들수록 자주 생각한다.

건강은 괜찮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편도체는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편도체가 없다면 어떨까.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까.


그런데 어디선가 읽은 글에 의하면,

실제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긴 사람은

뱀을 만져도,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무 감정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그것도 문제다.

두려움은 결국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니까.



문제는 균형이다.


너무 많이 두려워하는 것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좋지 않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편도체와 이성이 적당히 타협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벽 세 시,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천천히 숨을 쉰다. 하나, 둘, 셋, 넷.


편도체에게 말을 건다.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은 안전하다고.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으면,

어느샌가 긴장이 풀리고 다시 잠이 찾아온다.


내일은 조금 덜 두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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