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의 꿈, 스무 해 전의 맹세에 대하여
노래방에 가면 꼭 곤란한 순간이 찾아온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어느새 리모컨이 내 손에 쥐어진다.
화면을 넘기다가 그 노래가 나타나면
나는 슬그머니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부를 수 없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마' 부를 수 없는 노래다.
가사를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
첫 소절만 들려도 목이 메고,
중간쯤 가면 눈물이 나온다.
그런 노래가 누구에게나 한두 곡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그게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다.
스무 해 전쯤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일인데,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힘들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기가 싫었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사무실 책상에서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으면
노래가 흘렀고, 나는 울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
그 가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나를 조금씩 지워가며
어딘가로 들어가려 애쓰고 있다는 것.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것.
그때 한 가지 다짐했다.
이 시간을 잊지 말자고.
이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반드시 글로 남겨서 기억하겠다고.
그것이 당시의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위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다짐은 서랍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건
11년 전 가을이었다.
뉴스를 보고도 한참 동안 믿기지 않았다.
영원히 목소리를 들려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그날 밤 오랜만에 그 노래를 들었다. 역시 눈물이 났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스무 해 전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를 위해 울고 있었다.
매년 가을이 오면 자연스럽게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쓰고 있다.
스무 해 전의 다짐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너무 늦었지만, 늦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
오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찾고 있다.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찾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금요일 밤이다.
창밖으로 십일 월의 차가운 공기가 흐른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헤드폰에서는 여전히 그 노래가 흐른다.
여전히 끝까지 부를 수는 없지만,
이제는 끝까지 들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https://youtu.be/pXSNAF6j8aw?si=rgAly6m1cVdA0ox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