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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식사 #4. 후라이드 치킨

나를 응원하고 싶은 날엔 후라이드 치킨

by 빈둥

다들 요즘 건강 괜찮으신가요?

"봄이 진짜 왔구나!" 했다가도 "아닌가..?" 하며 여전히 극세사 이불을 끌어안고 자는 요즘입니다.


날씨가 춥고 덥고를 반복해서인지 제 건강은 요새 썩 좋지 못합니다. 유별나게 무거운 피로가 자꾸만 몸을 끌어내립니다.


원인이 뭘까. 춘곤증인가? 혹시 갑상선이 안 좋나? 생리 때문인가? 코로나 재감염?


아님.. 마음의 우울이 몸까지 전이되었나.


네. 요즘 전 조금, 약간, 많이 우울한 편입니다. 우울감인지 우울증의 시작인지는 알 수 없네요. 아직은 좀 더 두고 보는 중입니다. 애초에 발랄한 성격은 아닌지라 가끔 이런 시기가 있거든요.


최근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 서른.

하던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할지 고민 중입니다.


맡은 일은 성실하게 하는 편이지만 흥미를 못 느끼면 길게는 못하는 성미라 이놈의 진로 고민을 아주 수시로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매번 진입엔 실패하는 중이라서요.


진로고민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연스레 끌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만 좀 적당히 정착해서 살고 싶습니다만 쉽지가 않네요.


했던 고민을 또 한다고 해서 능숙해지진 않는 게 좀 억울합니다만. 원래 이런 건가요?


저보다 더 살아본 분들의 경험이 궁금한 요즘입니다.


하여튼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우울과 불안, 걱정 따위의 것들이 아주 질척대며 달라붙더군요.


그것들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면 강남 한복판에서 트월킹도 출 수 있었는데요.


아차!


방심한 사이에 그놈들이 어느새 덩치를 키워 제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았더군요.


게다가 이상한 피로로 몸이 천근만근이라 요 이틀간 그 핑계로 누워 지냈습니다.


몸을 구부정하게 말고 누워서 "우울할 때 듣는 노래"를 검색해 틀어놓고 꼴값을 떨다가 깨달았습니다.


내겐 트월킹이 아니라 휴식이 필요했다는 것을요.


자꾸만 날 걱정하게 만드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여러 방면의 미래를 대비하려고만 했었는데 결국 그 모든 감정들의 원인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많이 쫄보거든요.

겁은 많은데 주변에 티는 안 내려고 합니다.


그러니 나라도 내가 겁먹은 걸 알아줘야 하는데, 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겁에 질려 바람 소리에도 귀 쫑긋 세우고 철야 경계를 서면서 그게 내 미래를 위한 대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대비 태세에도 결국 침대 위에 누워 우울 플레이리스트나 듣고 있잖아요?


나한테 필요한 건 겁에 질린 내 마음에 담요를 덮어주고서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천천히 기다린다고 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전력 질주를 할 때지 쉬어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빨간불인 것도 모르고 달려들었다 차에 치일 뻔했지 뭐예요?


쉬어도 된다.


천천히 기다릴 때다.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어쩐지 문제가 있는 것 같던 갑상선도 건강해진 느낌입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가벼운 마음과 달리 운동을 며칠 쉰 몸은 아주 무겁지만 오늘만큼은 다 견딜 수 있습니다.


운동이 끝나면 치킨을 사러 가기로 마음먹었거든요!


마음속으로 "치킨-!!!", "맥주우-!!"를 외치며 겨우 겨우 모든 운동을 마치고 동네의 저렴한 치킨 가게로 향하는 길(치킨 삼만 원 시대가 온다면서요? 맹세하는데 삼만 원 주고 치킨 한 마리 사 먹을 일은 제 인생에 없을 겁니다).


쪼르르 선 노란 개나리, 흰 매화, 분홍 벚꽃이 쌀쌀한 봄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3월에 벚꽃이라니, 지구 종말까지 가려던 생각을 멈추고 오늘은 그냥 그 산뜻한 아름다움을 즐기기로 합니다.


후라이드 치킨(프라이드보단 어쩐지 후라이드가 정감 가지 않나요?) 한 마리에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까지.


휴식이 필요한 저에게 주는 만찬입니다.


역시 사람은 배때기에 기름칠을 해줘야 거 인생 살만하다, 싶은 거 아니겠습니까?


집에 돌아와 엄마와 치킨과 맥주를 나눠 먹고 TV를 보며 깔깔대다 보니 적당히 알딸딸한 것이 아주 오랜만에 진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듭니다.


좋은 기름에 튀긴 것도, 좋은 닭을 쓴 것도, 독특한 메뉴도 아닌 흔한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일 뿐이지만 가끔은 그 흔하고 익숙한 음식이 주는 만족감과 안정감이 필요할 때가 있죠.


후라이드 한 마리면 될 것을, 참 많이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휴식이 필요하시진 않나요?

자기 마음을 잘 모를 땐 일단 치킨 한 마리 시키시죠!


오늘 밤엔 잘 아는 그 맛, 알아서 무서운 그 맛,

치킨에 맥주로 쉬어 가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잘 먹고 푹 쉬었으니

내일은 뭘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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