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둘째 날)
새벽, 시계는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불은 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깨어 있었다.
잠을 자지 않은 건지, 깨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방 안 한쪽, 내팽개쳐진 셔츠 더미에서 눅눅한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습기 속에 갇혀 있던 냄새는 조금씩 온도를 얻으며 공기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숨을 쉬었다.
무심코 들이마신 그 냄새가 목 뒤부터 서서히 번지더니, 복부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렸다.
거기엔 이름도, 사건도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무게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이내 주저앉았다.
무릎을 세운 채 팔로 감쌌고, 그 자세에서 작은 숨처럼 울음이 새어 나왔다.
처음엔 참으려 하지도 않았고, 풀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빨래에서 나는 냄새가 그녀 안에 남아 있던 감정의 무늬를 따라 저절로 흘러나왔을 뿐이었다.
그건 누군가를 위한 울음도, 자신을 위한 울음도 아니었다.
이유 없는 슬픔이 이유 없이 허락된 것이었다. 이른 아침이 되어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났다.
주방의 불은 켜지지 않았고, 그녀는 어둠을 걷지 않은 채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방 안은 아직 밤에 가까웠지만 창 밖은 조금씩 아침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컵을 입에 댄 순간, 무언가 시야에 닿았다. 맞은편 아랫집,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집만. 그 불빛은 노랗지도 차갑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형광등의 빛이었다.
그 불빛 아래 흰 천 하나가 마르지 않은 채 난간에 걸려 있었다.
어젯밤보다 더 하얗고 선명하게 보였다. 물기가 남은 천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창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멀리서, 어둠에 가려진 채 그 집을 바라보았다.
그 집의 이른 아침이 시작되는 소리들을 상상했다.
커피 끓는 소리, 컵 놓는 소리,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식탁 위,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누군가의 뒷모습.
그건 누구의 집도 아니었지만 한때 자신의 집이기도 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치 지금 그 집의 공기 안으로 자신이 스며들 수 있을 것처럼.
그러곤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슬프지 않게.
그저, 지나간 삶이 지금 누군가에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처럼 느껴졌다. 물이 담긴 컵은 그녀의 손 안에서 조금 식었다.
다 마시지 않은 채 싱크대에 내려놓고, 그녀는 불 켜지지 않은 부엌을 조용히 지나쳤다.
거실로 돌아오며 베란다 앞에 멈췄다. 창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커튼은 어젯밤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닫히지 않았고, 어떤 생각은 걷히지 않았다.
그녀는 커튼을 걷지 않았다. 창을 열지도 않았다.
그 집의 빛과 흰 천은 그녀의 시야에는 없었지만,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잠깐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얹고, 고개를 기대어 아무런 목적 없이 그 자리에 몸을 얹었다.
그건 피곤해서가 아니었고, 슬퍼서도 아니었다.
조금 더 이 여운 속에 머물고 싶다는 자기 안의 조용한 합의였다. 빨래는 여전히 바닥에 있었다.
젖은 셔츠는 마르지 않았고, 그 위로 떨어진 그림자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그녀는 그것들을 다시 널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무언가 시작된다는 감각만으로도 조금은 충분했다. 오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그녀는 앉아 있었다.
불 켜지 않은 거실, 젖은 셔츠 위로 빛이 기울던 그때— 툭.
창문을 때리는 첫 빗방울 소리. 툭, 툭. 툭, 투둑. 고르게 맞지 않는 리듬.
예고 없이 시작된 비.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귀가 먼저 반응했다.
그 소리는 창문을 두드린다기보다 마음 한곳을 ‘두들기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가 계속되자 그녀의 어깨가 아주 작게,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막 깨어난 감정이 다시 젖어들기 시작했다.
마르지 못했던 것들이 창밖에서부터 다시 돌아오는 느낌. 맞은편 아랫집이 보이는 방향은 여전히 커튼 뒤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의 흰 천이 이번 비에도 마르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역시 지금 막 또 한 번, 젖기 시작했다는 걸.
손을 뻗지 않았다. 창을 닫지도, 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소리를 그대로 듣는 중이었다.
감정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고, 그녀는 그 기울지 않는 상태로 잠시, 비 안에 머물고 있었다. 빗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툭, 툭. 투둑, 툭. 창을 두드리던 물방울이 이제는 방 안 어딘가로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말도 생각도 없이 젖은 셔츠가 놓인 바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를 집었다. 구겨진 채, 말라가던 셔츠. 손에 쥐자 다시 물기가 스몄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바깥은 젖은 공기로 가득했다. 그녀는 잠깐 멈췄다가, 그 셔츠를 창밖으로 던졌다.
천은 공중에서 짧게 퍼졌다가 비 맞은 난간에 툭,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문을 닫았다. 닫힌 유리 너머로 빗소리는 여전히 계속됐다.
그 셔츠는 더 이상 방 안에 없었다.
감정이 들어오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밀어낸 것이었다.
물기가 손끝에 남았다.
그 감촉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어떤 것보다 더 분명하게 살아 있었다. 저녁, 비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의 비는 천천히, 방향 없이 모든 것 위에 머물렀다.
그녀는 창가에 섰다. 커튼 사이로 맞은편 아랫집이 보였다.
베란다의 창은 닫혀 있었고, 그 안쪽에 걸린 흰 천 한 장이 눈에 띄게 무거워져 있었다.
젖은 건 아니었다. 그저 습기에 스며들어 천이 아래로 더 깊이 처져 있었고,
그 처진 곡선은 어딘가 눅눅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내던진 셔츠를 떠올렸다.
그 셔츠도 지금쯤 바람 없는 공간에서 빗물 대신,
공기의 수분으로 천천히 젖어들고 있으리라.
감정도 그랬다.
한 번 뱉은 감정이 금세 멀어지는 게 아니라
공기처럼, 습기처럼 조용히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녀는 그걸 느끼며 창에 기대지 않았다.
유리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다만, 그 감정을 막지 않고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