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가 마르지 않는 날

셋째 날

by 바인

(셋째 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낮고 건조한 소리.

비가 오는 날의 벨소리는 어딘가 더 먼 데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젖지 않은 종이 테이프, 조심스럽게 적힌 이름, 익숙한 손글씨. 그녀는 상자를 들었다.

무게는 분명 있었지만, 손끝엔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다.


상자를 열자 익숙한 물건들이 나왔다.

다림질된 셔츠, 책 몇 권, 커튼 한 쌍,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던 머그컵 하나.

그건 전부,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물건들이 이 공간 안에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머그컵을 들어 올렸다.

손에 익은 곡선, 입술이 닿던 자리의 작은 흔적. 모든 게 맞는데 지금,

여기에선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그 컵을 들고 있었다.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익숙한 곡선, 입술이 닿던 자리. 손에 착 감기는 무게. 모든 것이 익숙했음에도 낯설었다.

그녀는 그걸 내려놓지 못한 채, 문득 조용히 오래 서 있었다.


손에 든 머그컵을 더는 들고 있을 이유도, 놓을 자리를 찾을 힘도 없이

거실 장식장 옆 엉성하게 놓인 박스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임시로. 지나가는 마음처럼. 언젠가 다시 치워질 자리에.

컵은 거기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도 그 컵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무언가 위에 올려진 사람 같다고 느꼈다.

누가 두었는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거기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저 잠시 거기에 있는 사람.

방 안의 모든 것들이 다른 집에서 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 집도, 이 공간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 작은 기척이 스쳤다.

이건 외로움일까? 쓸쓸함일까? 둘 다 분명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너무 오래 어딘가에 ‘임시로’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저녁, 해는 지고 있었다.

빛은 길게 늘어지다 어느새 방 안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조명을 켜지 않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방은 그녀에게 충분하게 밝았고,

그 어둠은 그녀에게 익숙했다.


싱크대 앞에 섰다.

물 한 잔, 남은 즉석밥, 전자레인지 소리. 숟가락을 꺼내는 손. 모든 동작은 익숙했고, 익숙해서 무의미했다.

그때, 창밖 건너편 아랫집에서 불이 켜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은 어딘가 따뜻했고, 누군가가 돌아왔다는 흔적처럼 집 안을 가만히 채우고 있었다.

흰 천은 여전히 베란다에 걸려 있었지만,

그 위로 노란 불빛이 스며들자 그녀는 그 집 안의 저녁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 젖은 우산. 익숙한 슬리퍼 소리. “여보, 나 왔어.” 작은 말. 그 뒤에 따라오는 웃음. 그녀는 그 모든 장면이 어딘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에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그게 한때 자기 것이었다는 감각도,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감각도 둘 다 조용히 몸 안에 들어왔다.

그녀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씹는 입 안에 기억이 조금 스며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