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가 마르지 않는 날

넷째 날

by 바인

(넷째 날)

새벽, 어둠은 여전했다. 비는 그쳤고, 방 안은 맑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다기보단 그냥 더는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딘가 안쪽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뜨겁고 말로 꺼낼 수 없는 무언가.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어둠 속, 방 한가운데 멈춰 섰다.

그때— 시야 한쪽에 박스 위에 올려놓은 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녀는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더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걸음을 옮겼고, 컵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욕실로 향해 그 컵을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던졌다.

소리. 깨지는 유리. 터진 감정. 모든 게 잠깐이었고, 그러나 충분했다.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다.

욕실 바닥, 세면대 옆, 발치. 그녀는 그걸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울지 않았지만, 그것은 울음과 다름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시작했다. 아침은 이미 와 있었다.

햇빛은 커튼 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고, 방 안은 서늘하고 투명한 공기로 차 있었다.

그녀는 눈을 뜬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누워 있지도, 완전히 일어서지도 않은 그 어정쩡한 자세로.

몸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생각도 없었고, 느낌도 멀리 있었다.


욕실 안, 깨진 컵 조각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문을 닫지 않았기에 그 파편들이 내는 조용한 존재감이 방 안까지 번져왔다.

그녀는 그걸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자신의 감정이 다 빠져나가 그대로 식어 있다는 걸 알았다.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그 흐름을 따라가지도, 거스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안에 잠겨 있었다.

어디선가 세탁기가 돌아가는 둔한 소리가 들렸다.

창밖에서, 건너편에서. 그저 멀고 익숙한 소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말도, 생각도,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조금은 편안했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섬유 유연제 냄새가 스쳤다. 아주 희미하고 부드러운 향. 아마도 건너편 아랫집.

아까 들렸던 세탁기 소리.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 냄새가 방 안을 가로질러 조용히 지나가도록 두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일어났다. 천천히, 익숙한 걸음으로 베란다로 향했다.

젖은 채 내팽개쳐졌던 빨래들이 한쪽은 바닥에, 한쪽은 여전히 물기를 품은 채 삐뚤게 걸려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것들을 걷었다. 냄새는 이미 옷에 배어 있었고, 손끝은 차가웠지만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빨래통에 한 장, 또 한 장, 조용히, 천천히 다시 넣어갔다. 세탁기 문을 열고 옷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하루가 조용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