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따라 걸은 스페인.
초록빛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익숙한 감각의 질서는 무너진다. 붉은 입술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그 낯선 아름다움 앞에서 표정을 읽으려다 이내 색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시선을 따라가다 경계 없는 화면의 깊이에 잠긴다. 그림 속 소녀의 침묵하는 시선은 기이한 힘으로 시선을 붙들어 놓는다.
이것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의자 앞의 프란지>는 1910년, 낡은 관습을 부수고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독일 표현주의 그룹 '브뤼케(Die Brücke)'의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그림이 그룹의 첫 전시회 카탈로그 표지를 장식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내세운 가치가 바로 이 안에 담겨 있음을 증명한다.
색은 더 이상 실제를 반영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는 가장 선명한 언어다. 빛과 어둠마저 감정의 농도에 따라 나뉘는 듯한 이 세계에서, 새로운 시대의 얼굴이 된 것은 열두 살 소녀 '프란지'였다. 그녀의 꾸밈없는 존재는 문명에 대한 비판과 본능적 삶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예술가들에게 더없이 완벽한 상징이었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불안과 긴장의 공기다. 소녀는 의자에 앉아 있지만 정적인 안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뒤에 조각처럼 버티고 선 의자는 보호자인 동시에 그녀를 압도하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보인다.
푸른색과 주홍, 초록과 분홍이 맞물리는 기묘한 색의 조화는 일상의 평온 아래 도사린 불안을 숨기고 있는거 같다.
키르히너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의 정확성보다 내면의 진실을, 고요한 재현보다 감정의 격렬한 분출을 택했다.
그래서 소녀의 얼굴에 칠해진 낯선 색채는 보는이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시대의 파격을 담아낸 초록의 얼굴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작품 정보
작가: Ernst Ludwig Kirchner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작품명: Fränzi before a Carved Chair (의자 앞의 프란지)
제작연도: 1910
재료: 유채, 캔버스 위에 채색 / Oil on canvas
소장처: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무세오 나시오날 티센-보르네미사), Madrid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