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따라 걸은 스페인.
겹쳐진 두 얼굴과, 서로를 감싸는 손과, 맞닿은 시선 사이. 말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침묵이 흐른다.
남자의 눈은 어딘가 멀고 낯설다. 그러나 여자의 눈은 그 거리마저 감싸려는 듯,
몸을 기울이고 입을 열려한다. 사랑을 속삭이기보단, 사랑을 지키려는 듯한 자세다.
푸른 얼굴 위로 번진 붉은 입술이, 붉은 어깨와 손끝이, 지금 이 장면을 붙든다.
이 그림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 독일 사회에 깊게 깔린 불안감과 긴장 속에서 태어났다.
놀데가 이 작품을 그린 1913년경, 그는 독일 표현주의 그룹 ‘브뤼케(Die Brücke)’와 단절한 뒤
보다 내면적이고 신비로운 색채 언어를 추구하던 시기였다. 형태보다는 감정, 윤곽보다는 정념이 더 중요해진 시절이었다.
그 변화는 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체는 뚜렷하지 않지만, 색은 강렬하다.
초록빛 외투를 입은 남자의 차가운 표정과, 붉은 머리카락과 피부를 지닌 여자의 기운이 대비를 이룬다.
푸른색은 화면 전반에 드리워져, 두 사람을 현실이 아닌 어떤 내면의 공간에 놓아둔다.
그 속에서 둘의 관계가 꼭 연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린다.
보호하거나, 의지하거나,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 모든 감정이 오롯이, 붉고 푸른 화면 위에서 파도친다.
놀데는 독일 표현주의의 핵심 인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화가였다.
그는 빛보다 감정을 믿었고, 사실보다 상징을 더 가까이 두었다.
이 그림의 붉은색은 피처럼 뜨겁고, 푸른빛은 그림자처럼 깊다. 푸른 침묵 속에서, 붉은 기운이 마음을 붙들고, 초록은 조심스러운 거리를 유지한다.
그 모든 감정이 오롯이, 붉고 푸르고 초록이 뒤섞인 화면 위에서 조용히 파도친다.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 처음엔 선명하게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서서히, 마치 어두운 물속에서 떠오르듯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두 사람의 감정은 화면 너머로 번진다.
그건 기쁨이나 확신 같은 이름과는 조금 먼 것이다.
불안과 기대, 주저함과 애틋함, 서로를 붙드는 동시에 밀어내려는 모순된 감정들이 붉은빛과 푸른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얽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의 중심에 함께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입술 대신 눈빛과 손끝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마음 한쪽이 쓸쓸하게 흔들린다.
서로를 구원하려는, 조용한 속삭임이 들리기 때문이다.
작품정보
작품명: Junges Paar (젊은 연인)
작가: Emil Nolde (에밀 놀데)
제작연도: 1931-1935년경
재료: 캔버스에 유화 (Öl auf Leinwand)
소장처: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Madrid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