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 with Doll-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그림을 따라 걸은 스페인.

by 바인
이미지 출처: Bine

꺼풀이 반쯤 내려온 얼굴로, 손끝에 인형을 꼭 쥔 채 무언가 말하려는 듯, 그러나 끝내 침묵하는 아이.

그 얼굴 앞에서, 고요가 나를 감쌌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모든 감정이 더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림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마음의 언어가 되어 나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1910년, 유럽은 격동의 문턱에 서 있었다. 독일 표현주의와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을 실험하던 시기였다.
러시아 태생이지만 독일 표현주의 운동의 심장부에서 활동한 야블렌스키는, 칸딘스키와 마르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의 일원이었다.

그가 속한 이 집단은 감정과 정신성을 색과 형태로 밀도 있게 드러내고자 했고, 그 영향은 이 작은 초상 안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 흐름에서 색은 더 이상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야블렌스키 역시 그러했다. 그는 인물화를 그리되, 인물의 사실성보다 감정의 색채, 영혼의 기호를 담고자 했다.

아이와 인형 (Child with Doll)에서도 그 특징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물의 윤곽선은 굵고 단순하지만, 그 안엔 놀라울 만큼 깊은 감정의 층이 있다. 푸른 그림자와 붉은 뺨, 눈두덩의 묵직한 색은 마치 내면의 바람에 흔들리는 우울과, 그리고 말하지 못한 사랑을 눌러 담은 듯하다.


인형을 잡은 아이의 손가락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인형을 더듬는 듯 보인다. 그 동작엔 아이답지 않은 조심스러움이 있다. 어쩌면 인형은 누군가를 대신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떠난 엄마일 수도, 잃어버린 누이일 수도,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 Bine

어두움 속에서 녹색과 적색이 부딪히는 대담한 조합은 눈을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그 화려함조차 아이의 표정 앞에선 조용히 물러난다. 색은 강렬하지만, 그 강렬함보다 오래 남는 것은 조용한 감정이다. 이 모순된 감각이야말로, 이 그림의 기묘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작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과도기적 그림을 좋아한다. 완성되어 가는 흔적들, 창조의 과도기가 날것 그대로 남아 있는 화면.
야블렌스키의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이 작품에 특히 마음이 끌린 건, 훗날 '헤드(Heads)' 시리즈로 이어지게 될 그의 과도기적 사유가 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직한 얼굴보다, 단순한 얼굴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말하지 않는 아이. 아무 말 없이 안겨 있는 인형. 그 둘을 바라보는 우리까지, 조용한 시선이 이 안에 머문다.

이 작은 화면은
처음 누군가를 껴안았던 기억,
등을 가만히 토닥이던 밤을 떠올리게 한다.


인형을 꼭 쥐고 있지만, 그 눈은 인형을 보지 않는다. 아이의 시선은 엇갈리고, 손끝은 말보다 먼저 감정을 전한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 감정이 아이의 것인지, 인형에게 투영된 것인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작품정보

작품명: Kind mit Puppe (아이와 인형)
작가: Alexej von Jawlensky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제작연도: 1910
재료: 판지에 유채 (Öl auf Karton)
소장처: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Madrid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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