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은 있는지?
질문 : 블록체인과 지역화폐의 호환을 바라는 젊은 세대의 마음이 좌절되었던 한 해였는데, 블록체인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은 있는지?
- 이 질문에서 좌절되었다는 말은 아마도 코인거래로 부자가 되고 싶었는데 반대로 돈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맞나요? 블록체인 기술은 코인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코인이 중요한 애플리케이션 이기는 하지만요.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술이다 보니 오남용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 닷컴버블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IT 기술이 뭔지 정확히 모르던 시절에 과도한 투기 열풍이 있었죠. 지금도 비슷한 때인 것 같습니다. 코인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 블록체인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도한 투기열풍이 불었고 그로 인한 피해자도 많아졌죠.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려 이것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도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기술의 활용도에 대해 설명하자면 공개 장부가 필요한, 혹은 신뢰가 필요한 모든 곳에 이용이 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코인 같은 거래는 물론이고 지역화폐, 물건이나 화물의 이동경로, 투표, 증권 등 다양한 곳에서 블록체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매력은 중앙 통제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직은 요원해 보일 수 있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따라 개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블록체인 기술은 분명하게 실용화될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 사용하던 컴퓨터와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좋은 하드웨어를 지금은 손안에 들고 다니는 것처럼요.
- 재밌게도 지역화폐를 언급하셨는데 발전하는 기술들은 점점 더 개인에게 없던 권한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왕이나 귀족들만 할 수 있던 일을 지금은 더 많은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것처럼요. 블록체인은 기존에 기관이 증명하던 일을 시스템으로 치환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게 가장 핵심이 되는 기술이죠. 국가 같은 추상적인 기관의 힘이 강해질수록 개인의 힘은 약해집니다. 그럴수록 희생당하는 개인은 많아질 수밖에 없고요. 물론 국가라는 기관이 중요하지만 정말로 발전된 미래에는 아마 필요 없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대신 그 일을 시스템이 대신하게 되겠죠. 덕분에 개인은 더 큰 자유와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반대로 개인의 자유나 책임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글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대중이 글의 힘을 알게 되었을 때 권력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고요.
- 지금 저희는 한국은행에서 찍어낸 돈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국가가 경제를 만들어 내는 힘이 되고요. 다른 나라도 비슷합니다. 앞으로는 기업들이 먼저 자신들의 화폐를 찍어낼 겁니다. 지금은 포인트라는 이름으로 애매한 경계에 있는데 실제로 네이버 같은 대기업의 포인트는 현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쓰이고 있습니다. 예전의 도토리가 발전된 버전이죠. 앞으로 지역들은 각자의 화폐를 찍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조합들도 그렇고요. 지금의 돈이 편한데 뭐 하러 불편을 감수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돈의 생리를 조금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이번 코로나 때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엄청난 돈을 시장에 풀게 됩니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죠. 하지만 전체 부가 퍼지는 비중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국가에서 뿌리는 돈에 비해 그 돈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적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흐르는 물이 산골짜기 곳곳에 뿌려지려면 많은 길들이 필요합니다. 지역화폐는 그 길을 만들어 내게 될 거예요. 그 덕분에 기존보다 조금 더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지난 질문의 민주주의와도 큰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는 많은 시스템들이 가장 많이 고민 하는 것 중 하나가 거버넌스 입니다. 참여자들이 네트워크에 어떻게 참여하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고 어떻게 문제들을 개선하는지 시스템적으로 설계하는 일이죠. 물론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성숙한 의식을 가진 다수가 존재해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늘 그렇듯 하나씩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가며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이 공동의 목표와 시스템의 존속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늘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론들을 매일 같이 실험하고 있습니다. 실제 민주주의는 실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국가라는 시스템의 존속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는 다르지만 그 결이 비슷한 블록체인 내에서의 거버넌스 실험은 훨씬 다양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새로운 혹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