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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원 Jul 15. 2021

작은 집

아픔에도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공간을 서슴없이 보여주던 어린 날이었다. 장의 집은 한집을 반으로 쪼개 옆집과 전등을 나눠 쓰던 작은 집이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장에 집에서 내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난방이 잘 안되던 집은 겨울의 추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입김을 불면 작은 안개를 피웠다. 우리는 2인용 전기장판에 3,4명이 모여 이불 아래 몸을 숨기고 코끝이 시리는 줄도 모르고 그날의 이야기들과 훗날 꿈들에 대해 쏟아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나는 불난 집을 처음 목격하게 됐다. 전등을 나눠 쓰던 옆집에 불이 나 그 친구는 바로 옆에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 집은 예전 집보다 더 작은 집이었다 방과 부엌, 화장실이 끝이었던 집은 신발장에 부엌이 함께 있었고 3평짜리 방에 옷장과 책상이 우겨져 남은 자리에는 이불이 깔려있었다. 우리는 그 작은 집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 집도 예전 집처럼 추웠다. 어머니가 일찍 퇴근한 날이면 우린 한 공간에서 다른 일을 했다. 같이 티브이를 보거나 나누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서슴없이 나누던 대화를 이어갔다.


그 시절 우리는 자주 부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진짜 친엄마가 나타나 좋은 집으로 자기를 데려갔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꽤나 진지하게 털어냈다. 한 번은 지나가는 길에 허름한 빌라를 가리키며 자기가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옆집에는 매일 싸우는 부부가 살았고 윗집에는 변기 뚜껑을 던지는 이상한 아저씨가 살았다고 했다. 겉으로 조용해 보이지만 기상천외한 일들이 매일 밤마다 일어난다고 했다. 요상한 집과 불난 집, 그리고 현재 친구가 살던 집은 3분도 안 되는 거리를 유지한 채 친구의 유년시절을 품고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 시내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은 어두워서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웠다. 번화가를 걷다가 그 친구의 집으로 방향을 틀 때면 그 길에서는 소리가 멈춘듯했다. 친구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부리나케 뛰었다. 그 뒤를 돌면 주황색 가로등만이 돌아온 길을 비추고 있었다. 친구의 집 주변에서 얼마 안 가면 홍등가가 있었다. 어릴 땐 소문이 무성한 그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훔쳐봤지만 우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지나칠 때면 좀 더 먼 길을 선택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의 집에서 버스를 타고 신시가지로 나오면 그곳의 분위기는 또 달랐다. 가끔은 어두운 동굴에서 나온 듯 아파트의 불빛이 눈부실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작은방에 구겨사는 친구도 요상한 집들도 빨간 불빛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친구와도 그 동네와도 함께 졸업했다. 학교에서 완전히 멀어진 후에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지금은 내 방에서 보이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쏟아있는 빨간 간판을 보며 그쯤 그 친구의 집이 위치해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 그곳과 항상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둥둥 떠있는 불빛들을 자주 찾아봤다. 하염없이 그립다 가도 캄캄한 어둠에 데일 때면 정처 없이 거닐던 어두운 골목을 우린 어떤 표정으로 걷고 있었을까 한참 생각한다. 우리의 어린 이야기를 품은 곳이자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민낯의 살 부비던 날들이 여전히 저 어둠 아래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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