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작업실

by 담담글방

집에서 차로 5분 거리, 도보로 25분가량 걸리는 곳에 작은 원룸을 얻었다. 책상을 사고 집에서 쓰던 의자를 갖다 놓고 언니가 준 토퍼를 바닥에 깔자 아늑한 작업실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물줄기 굵은 하천이 보였고 분당 오피스텔처럼 넓지는 않아도 충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루하루 가는 게 초조했던 한 달 단기 임대와는 달리 1년 계약한 곳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집을 오고 가며 글을 쓰고 조금 피곤한 날에는 작업실에서 잠도 자며 이전에 비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안 들어가던 돈이 매달 나가게 생겼지만 곧 집중해서 일을 하면 그 이상의 수익이 들어올 거라고 자신했다.


이상한 건 단기 임대 작업실에 있을 때와 새로 얻은 작업실에 있을 때의 기분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분당 작업실 비해 너무 작은 방이라 갑갑해서 그런가, 아니면 20층 탁 트여있던 곳에서 지내다가 3층에서 지내려니 시야가 가로막혀 그런가 싶었다.


하천이 보이긴 했지만 저층이라 방범창이 있어 안에 갇힌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작업실을 얻으면 글이 무척 잘 써질 줄 알았다. 단기 작업실을 얻었을 때 그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작업실은 내 오랜 로망이었으니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작업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만 같다는 근자감이 생겼다.


현실은 침대에 딱 붙어있는 내 모습이었다. 글에만 집중하면, 작업실같이 내 공간이 있다면, 육아와 집안일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혼자 집에서 육아와 집안일과 방송 일과 다른 글들을 쓰는 동안 그런 공간과 시간이 절실했었다.


그 절실함 끝에 마련한 공간인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작업실에만 가면 자연스럽게 침대에 눕는 게 습관이 됐다. 출산 후 만성 염증들을 달고 살던 몸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고 바로 회복되지 않았고 조금만 무리하면 구내염이 도졌다.


늘 몸이 무겁고 허리가 아프긴 했지만 오히려 집에서 틈틈이 글을 쓸 때보다 작업량이 줄어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차올랐다.


이제 더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일을 못 한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물론 남편에게 맡겨놓은 육아나 집안일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여전히 많았다. 결혼 후 계속 일만 하던 남편이 육아와 집안 살림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다툼은 계속됐다.


분명 작업실을 얻은 건 감사한 일인데, 내 일이 잘되지 않아 슬럼프 비슷한 게 찾아와 다툼에 불을 지폈던 것도 같다.


남편이 잘하는 것도 물론 있었다. 남편이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집이 전반적으로 쾌적해졌다. 그동안 아이한테 늘 미안했던 것 중 하나는 난장판이 된 집에서 생활하게 했던 것이었는데 이제 아이도 자기 방을 깨끗하게 꾸미고 정리할 줄 알게 되었다.


지인들이 가끔 오면 달라진 집에 놀랄 정도였다.


내 공은 아니라서 “남편이 치웠어요.”라고 밝히면 지인들의 남편에 대한 평가가 플러스 70 정도는 상승하는 게 그 시선에서 느껴진다. 그러고 나면 본인 남편들이 얼마나 집을 잘 못 치우는지에 대한 귀여운 험담이 이어진다. 대부분 지인들 남편의 모습은 나를 닮아있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이 편치 않다.


정리를 워낙 못하는 나는 작업실도 곧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침대 한쪽을 차지한 책들과(책을 보고 쌓아두는 게 습관이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 옷과 양말, 택배 상자 등등.



일단 무언가를 쓰고 나면 제자리가 아닌 그 자리에 놓는 게 오래된 나쁜 습관이었다. 어느덧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숨이 나오기까지 했다.


남편은 무척 깔끔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정리 못 하는 나한테 지나친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본인이 지저분한 집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거에 비해서는 가벼운 잔소리를 가끔 하는 정도여서 그걸로 싸움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남편의 잘하는 부분을 칭찬하고 못 하는 부분은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성격이 급한 탓인지 인내심이 없는 탓인지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인지 쉽지 않았다.


결혼 십 년 차에 가장 많이 다투고, 부부 생활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어쩌면 언제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로를 위해 여기서 그만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여러 차례 했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 내 남편 정도면 그래도 착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 둘 사이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작업실을 얻어 나오면 그래도 일이 잘되고 남편과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계속되는 다툼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에 비해 갑자기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마치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예전엔 서로 조금씩 참고 넘어가던 부분들도 하나하나 다 끄집어내어 해체하는 과정이 계속됐다. 상대의 바닥을 보는 게 괴로웠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나 자신의 바닥을 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실을 얻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집에 둘이 같이 있었다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작업실 얻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더 큰 이유는 이제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내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출산 후 늘 그런 생각을 해왔다. 내가 지금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육아와 끝도 없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물론 지금도 작업실에 있는 동안 아이가 먹고 자고 입는 것, 등교와 하교와 친구 관계와 엄마들과의 교류나 학교 행사 등등에 뇌의 한쪽은 계속 풀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는 집중 못하는 이유로 아이 핑계를 댈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 변명하지 말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보자고, 의욕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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