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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Mar 14. 2023

사소함을 기록하는 이유

그때 내가 뭐 했었지.     


어느 날 문득, 하얗게 지워진 날들이 있어 휴대전화 일정표를 열어보았다. 그즈음 기록된 이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무척이나 바쁘게 지낸 어느 날의 기록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기록도 없는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정이 집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그 사이 글을 쓰고 집 문제로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를 한다든가, 혼자 책을 읽는다든가.


아이를 데려온 후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간단한 보드 게임을 한  학교 행사 관련 줌 회의를10시까지 이어갔다든가.     


집 밖을 나선 일이라고는 아이 픽업뿐이던 나날이 있었다.  나는 분명 무척이나 바쁘고 피곤한데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날엔 이상한 자괴감이 들었다.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일정인 아이 픽업과 식사 준비와 정리는 양육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가사 노동이고 육아이기 때문에 별다른 일처럼 기록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일상의 모든 일은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일정은, 가사 노동과 육아는 나의 중요한 일정으로 존중받아야 했는데 나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 친구의 마실, 함께 먹은 저녁, 아이를 데려온 친구 엄마와 늦도록 나눈 이야기.      

30초 플랭크, 한 줄 쓰기,  한 줄 읽기, 명상, 북튜브 듣기 등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록은 플랭크, 한 줄 쓰기, 한 줄 읽기, 그리고 명상이다.     


고성에서 돌아온 후 플랭크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플랭크 30초는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정신없는 아침 시간을 지나 밤이 되어서야 플랭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으면 잠시 갈등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는 꾸준함을 지키고 싶었다. 1초여도, 그것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쩌다가 한 줄 쓰기나 한 줄 읽기를 잊은 날이 있었다. 바빠서가 아니라 그걸 안 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잠이 들던 날이었다.     


또 리셋하고 다시 시작한다.




사소함이 모여 나의 일상이 채워진다. 그 기록들을 보면  무척이나 소소한 것이지만, 아무것도 한 거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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