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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Mar 10. 2023

일단 씁니다

 글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돈이 될 글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커리어가 될지, 출간을 할 수 있을지, 브런치나 인스타에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씁니다.      


그렇게 써둔 글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지금도 브런치의 서랍에는 발행하지 않은 글들이 80개 가까이 됩니다. 브런치 전에도 저는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과정이 저의 글근육을 키워주었습니다. 몸에는 근육이 전혀 없어서 교통사고 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악담인지 걱정인지를 도수치료사에게 들었지만 글 근육은 제법 단단합니다.     


글 근육이 많다고 성공한 작가가 되거나 멋진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몸에도 다양한 형태의 근육이 있듯이 글 근육도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저의 글 근육은 형태가 멋있지는 않아도 앞으로도 꾸준히 쓸 수 있는, 거의 평생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어렵지 않게 해줍니다.      




무언가 원하는 바가 있어서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제 머릿속에 떠도는 이야기를 받아씁니다. 저는 수월하게 써지는 글이 좋습니다.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그렇습니다. 수월하게 써지는 글은 이미 제 마음과 머리를 거쳐서 어느 정도 익어 나온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보면서 멈추지 않고 글 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최소 30분은 그게 무엇이든 멈추지 않고 쓸 수 있습니다.      


글 쓰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잘 쓰거나 돈 버는 글을 쓰는 건 다르지만요.      


마음이 가는 글을 쓰는 건 편합니다. 남들의 평가나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면요.     


글의 가장 큰 적은 작가 본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이런 글이 어떤 의미가 있지? 다른 사람이 내 글을 나쁘게 평가하면 어떡하지? 역시 나는 재능이 없어... 등등.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그런 자기 검열과 고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방송작가를 하면서는 안 맞는 프로그램 원고를 쓸 때 너무 괴로웠고 장르소설 역시 저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저의 정체성과 맞지 않았어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쓰다 보니 또 좋아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써서 출간하기 전에는 거의 읽어본 적 없는 동양풍 로맨스 소설을 지금은 꽤 좋아합니다. 하지만 왕이나 세자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고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저는 민초들의 사랑을 씁니다.


이 얘기를 했을 때 누군가 박장대소하고 웃은 적도 있습니다. 그분이 즐거워해서 저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동양풍 장르에서 민초들의 사랑이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박장대소하게도 하는구나!

새삼 저의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웃는 그분에게 “민초들의 사랑도 사랑이라고욧!”, 항변해 보지만 그분의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동양풍 로맨스의 대부분은 궁정을 중심으로 하는 암투와 모략과 신분 차이의 사랑을 다룬 경우가 많습니다.


궁이라는 배경 안에서 극성이 높아지고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 신분이 미천한 궁녀와 왕이 사랑하거나, 무녀와 왕이 사랑하거나 그런 이야기는 시청자나 독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모양입니다.     


저의 경우 그런 배경과 캐릭터 설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권력에 욕심이 없고 그 험난한 궁 생활을 버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에 저를 대입해 봤을 때 왕이든 세자든 고백을 멀리멀리 도망가야 할 대상입니다.     


동양풍 로맨스에서 왕이나 왕세자를 안 쓰면(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소재와 캐릭터가 있지만 대중성이 큰 소재라 이 예시를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쓰세요? 그런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저는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씁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자마자 헤어져서 마지막에 만난다거나 그런.      


처음에는 보통의 로맨스 공식을 몰랐고, 지금은 7년 차 작가가 되어 제법 로맨스 소설이나 장르소설의 공식들을 알게 됐지만 클리셰를 잘 쓸 줄 모릅니다. 쓰고 싶어도 못 쓴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 언젠가 로맨스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설정을 써보려다가 2화를 쓰고 중단했습니다. 그 글을 쓸 때면 노트북 한글 창을 열기만 해도 한숨이 나왔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노트북을 펴고 싶지도 않아 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과 결이 다른 글을 써보기도 하고

자괴감이 빠진 적도 많지만

오늘도 저는 일단 씁니다.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려고 쓴 건 아닌데

자꾸 서랍만 가득 차서 꺼내봅니다.     


오늘도 열심히 글 근육을 키워가고 있는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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