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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Aug 26. 2023

잠자고 있는 대본 깨우기 프로젝트

230823

얼마나 많은 습작들이 컴퓨터 깊은 곳에 잠들어 있을까, 그런 의문에서 혼자 시작해 보는 프로젝트.



 

이십 대 후반에 드라마 교육원에서 기초반과 연수반을 수료했다. 연수반 다음 과정이 전문반, 마지막 과정으로 교육원의 우등생들만 엄선해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창작반이 있다. 한 과정당 6개월가량이 걸리고 나는 2개 과정을 들어서 1년 동안 교육원에 다녔다.

     

당시 스터디를 했는데, 우리는 여러 편의 단막극을 쓰며 합평해 주었고 각자 공모전에도 내보았지만 드라마 작가로 입봉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아! 잠시 스터디를 스쳐 지나간 멤버 중 한 명은 시트콤으로 입봉 하긴 했지만 이후 들은 소식은 없으니 제외)     


드라마는 공모전에 당선된다고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도 아니다. 몇 년씩 원고를 수정하고 캐스팅과 편성을 기다리다가 엎어지는 일도 많다.


되기 어렵다는 공모전 당선작들도 그러니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감하곤 한다.


드라마 대본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출간도 되지 않는다. 유명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 작가님, 김은숙 작가님 등의 대본집은 나오지만 웬만해서는 방영된 드라마도 대본집 출간이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 작가 지망생들의 습작은 대부분 개인 컴퓨터에서 잠자게 된다.




나 역시 스터디를 위해, 그리고 교육원 과제를 위해 쓴 글이 몇 편 있다. 백업을 해두지 않아서 남은 원고는 하나도 없지만.


지금도 연락하는 스터디 멤버들이 본인의 컴퓨터를 뒤져 볼까 친절을 베풀었지만 막상 다시 보려니 낯부끄러워서 괜찮다고 사양했다. 그때 쓴 글이 최소 예닐곱 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 스터디 모임에서 혹평을 받은 글도, 호평을 받은 글도 있지만 드라마 단막극 대본으로 완성도가 있었던 글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습작 중 딱 한 편은 애정이 남아 있어서 찾게 되면 수정해보고 싶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일단 지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드라마 작가로 입봉 한 학교 후배, 유명 작가님의 보조작가로 일하는 스터디 멤버 동생, M사 단막극 최종심에서 떨어졌지만 해당 방송사 피디와 스터디를 했던  다른 동생이 있다.  선배는 K사 단막극 최종심에서 떨어진 후 그 글을 수정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   


선배가 그 원고를 그대로 컴퓨터에만 간직했다면 시나리오 대상이라는 결과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선배를 제외하고는 지인들 중 정성 들여  습작을 세상에 선보인 경우는 없다. 길게는 20년 가까이 묵힌 원고도 알고 있다.

      

 원고들을 꺼내놓으면 어떨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쪽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대부분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본인이 쓴 대본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 하지 전자책으로 낼 생각 자체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이디어를 빼앗길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어떤 우려인지 이해는 하지만 전자책은 출간되며 국제표준도서번호 ISBN을 받는다. 법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세상에 내놓기엔 너무 부족한 글이라는 이다. 공모전 수상작도 아니고 어떤 타이틀도 없는 습작이기 때문이다. 영상화를 위해 쓴 글이라 그 자체로 작품이 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는 나도 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면 그 글들을 찾아 꺼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들이 깊은 잠을 자는 사이 기회는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가지망생 중 습작 기간에 자신이 썼던 글과 비슷한 소재나 내용을 다른 창작물에서 보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고백부부’라는 드라마와 주요 설정이 거의 비슷한 시놉을 썼던 적이 있다. 공모전에도 낸 적 없는 나만 아는 시놉이다. 그렇게 비슷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면 결국은 소재도 버려야 한다.


저작권을 따로 등록하는 방법이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글의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많이 부족하더라도, 어떤 소재나 캐릭터나 설정이 좋으면 2차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잠자고 있는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트를 떠올렸을 때 현재 드라마 작가로 활동 중인 후배가 떠올랐다. 나는 공개하지 않은 습작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후배가 교육원 다닐때 처음 쓴 습작이 있다길래 받아 읽어보았다.


어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왔다.


후배가 밀양에 내려왔을때 습작 원고에 대해 처음 듣고 제안한 것이다


후배는 본인이 애정을 갖고 쓴 글이긴 하지만 누가 이 글을 볼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부족함이 많다는 우려도 있다. 필명으로 낼 생각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해 나에게 도움이 안 될 거라며 그것도 걱정이었다.


후배의 글은 옛날 드라마시티를 떠올리게 하는 잔잔한 이야기였다.


결과를 떠나 이렇게 습작 대본을 출간한다의의를 두고 있다.

    

드라마 대본 에는 후배미니 인터뷰도 넣을 생각이다.


방송이 되지 않은 대본의 출간이라니!     

낯선 기획이지만 한 번 해보려고 한다.      


후배의 글은 아마도 필명으로 출간할 거라서 누군가는 현재 드라마 작가의 대본이라고 못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어차피 ‘잠자는 습작을 깨우는’ 게 목표이지 작가의 이름을 내세우는 걸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후배는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실명으로 낼까 하는 옵션도 고민하고 있지만 마음 가는대로 하길 바랄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선뜻 원고를 내어준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부디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캐스팅도 잘 되길!    

   

작년 고성에 대본을 쓰러 내려왔던 후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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