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 우울증일까요?
내 마음 나도 모를 때
별거 아닌 일에 너무 화가 날 때,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들 때.
하루하루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 우울증일까? 정신과나 상담센터를 가봐야 할까? 평범한 마음 상태는 아닌 거 같은데……. 출산한 후로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허리의 통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청춘은 마음의 한 시기’라는 말을 되새겨봐도 급격한 노화가 슬프고 하루 중 즐거웠던 시간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늘 아이와만 대화하다가 어쩌다 어른인 타인과 대화를 하면 방언 터지듯 말을 많이 해놓고는 집에 와서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이불킥을 하곤했다. 코로나로 일을 줄이며 사회와 단절된 기분과 함께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린 듯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TV 프로그램들을 볼 때는 정말 별 거 아닌 이야기에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언젠가는 아이에게 '호랑이 형님'을 읽어주다가 눈물이 빵 터져서 애가 몹시 짜증냈던 기억이 있다. 아이는 그게 어떤 이유이긴 내가 우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정말 황당했던 건 '달려라 하니'의 노래를 유튜브로 보여줄 때였다. 평소 아이에게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지만 달려라 하니 주제가는 노래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잠시 틀어주었다.
이선희님의 목소리는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에는 쓸데없이 고퀄리티였고 그래서 너무 슬펐다. 주제가 배경으로 나오는 영상들에서 하니가 돌아가신 엄마 품으로 달려가는 걸 보며 눈물이 터진 나는 아이 몰래 화장실로 숨어들어야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 아닌가 싶었다. 원래도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잘 하는 편이긴 했지만 이런 증상은 공감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이상해진 게 분명한 나는 어떤 우울증에 걸린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부 우울증? 육아 우울증? 아니면 코로나 블루?
확실한 건 최근 2년 사이 그런 증상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별 거 아닌 일에도 계속 화가 나고 침대에 누우면 꼼짝도 하기 싫고, 누구든 나를 내려버려 뒀으면 좋겠고, 일의 능률이나 인지 능력도 떨어진 것 같았다. 전에는 1시간이면 하던 일을 3시간이나 붙잡고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니면 전두엽의 문제일까. 뇌 과학책을 사볼까. 뇌 MRI를 찍으면 알 수 있을까.
온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받은 종합 건강 검진에서 우울증 체크 항목을 주의 깊게 확인해 보기도 했다. 전체적인 종합검진 결과를 설명해주시는 분은 인자한 가정의학과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은 내가 체크 한 심리검사지 항목을 보시더니 우울증은 아니라고 진단하셨다.
그리고 우울증이 의심된다는 나의 말에 몇 가지를 물어보셨다. 그중 하나는 혹시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을 하냐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냐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첫 번째 질문에 혹시라도 불의의 사고나 예측하지 못한 질병을 얻어 일찍 죽을까 봐 엄청 걱정하는 편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이의 등하교 시간이나 학교 행사 일정과 상관없이 글을 집중해서 쓰고 싶었고 재미있는 책을 붙잡으면 다음 날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고 밤새 읽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본업인 방송작가 일은 재택으로만 가능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아 쉬엄쉬엄 하면서 거의 매일 장르소설을 쓰던 상황이었다. 남편은 내가 방송 일을 덜 하게 되면서 줄어든 수익 탓에 더욱 바쁘게 일했다.
남편은 새벽에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갔고 한 달에 쉬는 날이 두번이나 될까 싶게 정신없이 지내며 얼굴이 시꺼멓게 변해갔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우면서도 나는 나대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놀거리를 마련해 준 후 업무 관련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계속 끼어들어 전화를 방해했다.
"엄마 딱 한 시간만 일할게. 그동안 책 읽고 종이접기 하고 있을까?"
씩씩하게 알았다고 한 아이는 계속 노트북을 하는 내 다리 위에 앉거나 손톱 옆을 뜯었더니 피가 났다거나 읽을 책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일을 방해했다. 여덟 살 아이가 혼자 한 시간을 노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불쑥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글과 관련된 에너지는 남아있었다. 아니 글을 보고 쓰는 것이 내게 에너지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꾸준히 쓸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 그 어느 것도 즐겁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 나의 성취를 대신 해주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내 심리에 관해 얘기했더니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친절하게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해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셨다. 우울증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나는 지금 우울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번아웃 증후군 정도로 보인다고. 그건 환경적인 요인이 큰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당장 육아나 집안일을 그만둘 수도, 방송이나 글 쓰는 걸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런 진단 후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도망쳐 나오듯 단기 작업실을 얻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상담받을 때만 해도 도저히 내가 처한 환경을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물러설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순간 그걸 불가능하게 하는 다른 조건들은 모두 뒤로 밀려버렸다.
그때의 나는 99도의 끓기 직전 물이라 아주 조그만 자극에도 누군가를 화상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걸 자각했고 남편 역시 누구보다 내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가정의 유지를 위해 생계를 후순위로 미루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렇게 결혼 10년 만의 휴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