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에 파묻히다

오랜만의 게으를 자유

by 담담글방

『'보는 것만 고수'라는 말이 있다. 예민한데 게으른 족속들한테 일어나는 현상이다…혹시 게으른 족속들 중에 실재는 없고 보는 감각만 일류인 친구들이 있다면, 그래서 괴롭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보라고 말하고 싶다…어쨌든 조금씩 자기를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김지운의 ‘숏컷’ 中


혼자만의 식사,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일단 배달보다는 근처 식당 먼저 이용하자 싶어 내가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맛집 탐방에 나섰다. 건물의 지하부터 3층까지는 온갖 식당과 마트와 편의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외식도 안 하고 배달음식도 잘 안 먹던 나는 특히 백반에 꽂혔다. 제육볶음이나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같은 걸 시키면 매일 조금씩 바뀌는 반찬들이 함께 제공되는 그런 집 말이다.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에 나물 한두 가지, 거기에 운 좋으면 분홍 소시지 달걀부침 같은 것도 있고 더 운이 좋으면 떡볶이도 작은 접시에 나오는 그런 백반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메뉴를 정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개의 메뉴를 주문해서 먹은 이후로는 딱히 당기는 게 없을 정도로 쉽게 질리고 말았다.


고작 이삼일이 지나지 않아 바깥 음식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이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너무 짜다는 것이었다. 평소 재택근무를 하며 내 입맛대로 심심하게 한 음식에 더욱 익숙해진 상황이라 모든 바깥 음식이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전에는 회사에 출근하니까 한 끼라도 바깥 음식을 먹어서 내 음식과 남이 한 밥을 번갈아 먹는 동안 입맛이 중화가 됐는데 1년 넘게 내가 한 밥만 먹고 살았더니 도무지 적응이 안 될 만큼, 짜고 달고 매웠다. 그렇게 사 먹은 음식을 먹은 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입안의 짠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귀찮더라도 작업실에서 간단히 해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 한 끼는 냉동볶음밥 같은 걸로 해결하고 나머지 끼니는 샐러드와 과일, 빵과 떡, 누룽지 같은 걸로 때우기 시작했다. 늘 허기진 느낌인데도 큰 포만감 없는 간식 따위로 연명하며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군살 붙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운동을 위해 작업실 바로 앞 탄천으로 내려갔다. 고작 길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작업실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곳인데도,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내려온 것이다. 막상 찻길 하나를 건너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는 순간에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왜 이렇게 늦게 나온 걸까 자책하며 산책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하루 한 시간을 걸은 건 아니고 하루 5분, 10분의 적응 기간을 보낸 후 드디어 30분 걷는 데 성공한 날, 나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돌아왔다. 산책로의 나무는 높고 울창해서 (가보진 않았지만) 뉴욕 센트럴파크도 부럽지 않다고,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처음 탄천으로 내려왔을 때는 5분만 달리고 올라왔다. 오피스텔에서 나와 짧게 달리고 다시 돌아가는데 걸린 총 시간이 15분 정도였지만 탄천 길을 달린 시간은 딱 5분이었다. 그런데도 작업실에 올라오기도 전에 온몸이 아우성을 쳤다.


갑자기 혈액순환이 빨리 되기 시작하면서 몸 곳곳이 붉어지고 간지러워서 벅벅 긁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손톱자국이 나게 긁어야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고통스러울 정도의 간지러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고작 15분의 외출이었는데! 타이머를 재고 뛴 시간은 그중 5분이었는데! 시뻘게진 온몸을 보니 그동안 방치한 내 몸에게 몹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첫날 그렇게 달린 후 앞으로는 매일 탄천을 걸으리라 결심했다. 작업실 바로 앞이니 그 약속을 쉽게 지킬 줄 알았건만 막상 작업을 하다 보면 이것만 마무리하자, 조금 쉬자, 밥 먹었으니 바로 나가면 속이 부대낄 거다, 등등 별 핑계를 다 대며 산책을 망설였다.


나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몸을 움직이는 건 이렇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았다. 하루 정해진 분량을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고 싶었다. 그게 비록 몸을 좋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랬다.


그때의 내 가장 큰 욕구는 무조건 쉬는 것이었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 외의 모든 것에는 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평소 하루도 빠짐없이, 어쩌면 매 순간, 반드시 무엇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아직은 아이 케어에 집중해야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지, 산책을 매일 해야지, 스마트폰을 하지 않아야지, 등등 좋은 습관 들이는 건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해도 나는 방전된 에너지로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마 각자 회복의 방법도 다를 텐데 그때의 나에게는 그 방식이 필요했다. 몇 년 동안 슬금슬금 빠져나가서 이제는 비상 에너지만 남아 방전되기 직전인 몸과 마음에 아무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때 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아주 약간의 후회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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