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때 새로 사귄 도시의 친구는 손재주가 좋았다. 글씨가 귀엽고 다이어리를 잘 꾸몄었는데, 언젠가 짝이 된 적이 한번 있었을때 내게 조그만 선물을 하나 준 적이 있었다.
공테이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이브 앨범의 곡을 모두 녹음하고 테이프 겉면 사이즈를 맞춰 잡지를 오려붙인 아주 감각적인 불법복제본(!)이었다.
한창 촌놈코스프레 중이었던 나는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브를 꽤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 친구가.
걸의 아스피린을 좋아했던 시골 중학생은 새 친구에게 받은 이브의 너 그럴때면을 들으면서 낯설고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해갔다.
이십여년 가까운 세월만에 모습을 드러낸 48세 어르신 보컬 김세헌씨는 전혀 변하지 않은 화석 같은 외모와 목소리로 걸과 이브의 곡을 불렀다.
미묘하게 마음 설레게 하는 G고릴라의 곡들과 약간 설익은 듯한게 매력인 김세헌의 목소리가 잊고 있었던 오래전 기억들을 보글보글 부풀어오르게 한다.
그 손재주 좋았던 친구는 일찍 결혼해서 아들만 셋이라 들었다. 가끔 연락처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아이들도 엄마 손재주를 닮은거 같다.
예전 노래에 젖어드는거 보면 나도 점점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