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by 따따따

내가 초등학생일때만 해도 이맘때쯤은 운동회를 했었다. 요새는 주로 따뜻한 봄에 아이 부모들 사정을 감안하여 주말이나 휴일을 끼워서 한나절 잠시 하는 추세던데 그때는 가을=운동회였다.

죽어라고 단체무용이나 악대연습 각종 운동게임 연습 또 연습을 하는 몇주간의 혹독한 강행군을 하게 되는데, 연습하다보면 한나절씩은 훌쩍 지나가니까 공부보다 조금 낫긴 했다.

선글라스에 챙모자에 장갑과 긴셔츠로 자외선에 무장한 여선생의 매서운 말솜씨로 파닥파닥대던 부채춤은 산수보다 나을 것도 없었지만.

어느해에는 기악부 활동을 했기에 악대부로 운동장 퍼레이드를 하게 되었다. 난 리코더여서 뒤에 따라가면서 피리나 불면 되었지만, 매일 학교에서 담당 선생이 애들한테 얼마나 연습을 시켰던지 나뿐 아니라 다수의 아이들이 일주일넘게 밤만 되면 코피가 터졌고 학교에서 너도나도 코피터진 얘기를 했다 . 요즘 같으면 거의 학대라고 할 수준인데 애들 잡아놓고 시키는 선생의 역량도 대단했다라고 어른이 되고서 생각했다.

운동회의 주 목적인 운동 같은거에는 소질이 없어서 특히 달리기같은 컴페티션은 정말 질색이었는데 초등 6년중에 두번인가 3등으로 공책을 탄 적이 있었나 그랬다.

두번 다 장애물 달리기였기에 운이 좋았다.

밀가루 사탕을 빨리 입에 물고 평균대에서 균형을 잘 잡은 덕에 원래 나보다 잘 달리던 애까지 제치고.

뭐 공부시간보다 낫다해도 두루두루 할 일 많고 힘들고 귀찮은 행사였지만 운동회때 엄마가 해오는 점심만큼은 삶은 땅콩처럼 따뜻한 기억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땅콩을 삶아먹는 지역이다)

우글우글한 애들과 학부모들 틈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달리기를 잘했건 못했건 엄마의 김밥과 요구르트, 삶은 밤이나 땅콩으로 가을이 충만한 점심..

엄마는 청출어람이 되지 못한 허우대 멀쩡한 막내의 달리기 실력에 늘 섭섭함을 표했지만 어쩌랴. 다리가 천천히 가자고 하는걸ㅋ

다리 빠른 체육종자들의 엄청난 계주와,콩주머니로 터트리는 바구니가 빵빵 터지면 운동회는 끝난다. 내 콩주머니도 할머니가 양말로 만들어주었다. 문방구에 파는 것이 힘이 더 좋긴 했다.


그토록 따갑고 뜨거웠던 가을볕과 운동장을 둥글게 메운 사람들과 걷고 달리는 흙먼지로 가득했던 촌동네 운동회의 북적임은 이제는 사라졌다.

사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그다지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서도. .달리기를 너무 못했으니까 ㅎ

선듯선듯한 날씨에 밀려오는 그런 기억 하나쯤은 따갑지만 찬란한 가을볕처럼 영양이 많다.

아침 안개같이 자욱한 괜한 우울에 속까지 차가워지는것 같다가도 그때의 가을볕에 머리칼이 고소하게 타는 듯한 기운에 따끈따끈해져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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