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by 따따따

내 기억속의 외할머니는 엄마보다 키가 크고 말수가 적었고 쿨했던 성격의 소유자.

말년에는 늙고 작아져 쪼그라들고 급기야는 급성 치매로 순식간에 혹독했던 모습보다는, 그시대 촌사람치고는 키가 후리후리 컸던 비교적 젊은 60대의 외할머니 모습이 내 기억속에는 훨씬 더 크게 남아있다.

외할머니의 음식솜씨는 지독하기로 자식들 사이에서조차 정평이 나서 아무도 반찬 가져다 먹는 이가 없었지만, 나는 외할머니가 해주는 모든 음식을 좋아했다.

냉장고가 고장나서 얼어버린(!)계란으로 만든 묘한 식빵토스트와 몹시 짰던 된장을 좋아했다.

내가 먹고 있으면 맛있냐고 물어보곤 맛있다 하면 후후후 하고 웃었다.

대학 다닐때는 버스가 외갓집 동네를 통하는 노선이 있었는데, 5일장날과 학교 가는 날이 맞으면 항상 외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곤 그때마다 너희 엄마 아버지 너 미대 등록금 내니라 등골 뺀다고 하면서도 내 주머니에는 쌈짓돈 몇만원씩 꼬불쳐주곤 했다.

산뜻한 푸른색 줄무늬 셔츠를 입고 늘 옅은 화장을 빠뜨리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그 모습이 외할머니라고 내게는 선연히 뇌리에 박혀있다.

70대에 뇌수술을 하고 10세 연상이던 외할아버지가 89세로 돌아가시고 난 후 외할머니는 갑자기 폭 늙어버려서 진짜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엄마하고 외갓집에 가면 변함없이 똑같은 작고 소박한 그 집에서 옷을 꽁꽁 싸매입은 외할머니마저 작고 작게 늙어서는 깜빡 놀라며 반겨주곤 했다.

맏이인 엄마는 평생을 아들 며느리와 사는 자신의 시어머니와 홀로 쓸쓸한 고향집을 지키는 친정엄마와의 괴리에 가끔 눈시울을 적셨다.

내가 결혼한다고 인사 드리러 외할아버지의 기일겸 해서 큰외삼촌댁에 갔더니 먼저 도착한 외할머니는 나를 방으로 몰래 부르며 그 옛날 학생때 그랬던 것처럼 봉투 하나를 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축의금이란다.

결혼식에 오면 되지 노인이 무슨 축의금이냐고 한사코 사양하니 가시나야 다 늙어서 어딜 가냐며 넘들 욕한다고 봉투나 딴 사람 보기전에 빨리 넣어두라며 꾹꾹 밀어넣었다.

그때도 이미 외할머니의 정신이 아주 온전치는 않을때였는데,그게 마지막으로 내가 결혼하고 한 달 있다가 갑작스럽고 빠르게 돌아가셨다.

아아 외할머니.

지난밤 꿈에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보았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누가 나를 물끄러미 보길래 눈을 마주쳤더니 글쎄 외할머니였다.

여전히 젊고 키가 크고 예쁜 스웨터를 입고 꿈에서도 어찌나 반가운지 할머니 할머니 하며 외할머니의 허리를 감싸안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잠에서 깨서도 한참을 얼마나 생생하고 반갑고 눈물이 나던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글을 남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외할머니. 최장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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