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피리라는 동요가 있다.
섬집 아기처럼 잘 알려진 동요는 아닌듯 싶은데, 93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슬쩍 끼어있다시피 수록되어 있었던 이 소박한 동요가 종종 생각나는 이유가 있다.
그 당시 담임교사가 내 초딩 생애 첫번째 남성교사였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용돈 기입장을 사물함에 제때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애들 줄 세운후, 금시계 풀고 따귀 한대씩 후드려 맞고 무척 겁내게 되었던 사람이다.
뭐 겉모습이나 말솜씨는 매우 깔끔하고 단정했었다.
같은반 아이가 스승의 날에 선물한 작은 향수를 털이 북슬한 팔에 뿌리고는 큼큼대며 향을 음미하는 걸 특히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따귀 맞은 후론 겁나 쫄아있었는데 어느날 음악시간에 담임의 또다른 모습에 혼돈의 카오스를 느끼게 된다.
그땐 교실마다 작은 오르간이 한대씩 있었는데,그걸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지금껏 이 담임이 처음이었다.
대개의 교사들이 멋대로 코드를 집어넣어 막 피아노를 시작했던 어린 귀에도 애매하고 서툰 오르간반주로 재미없는 음악시간이 태반이었는데, 우리의 담임선생은 아주 완벽한 코드와 페달 사용으로 오르간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남선생의 오르간연주도 놀라운데 그날 가르쳐준 동요 소라피리를 부르는 그의 낭랑한 목소리가 일대 충격파를 일으켰다.
아주. 아주 낭랑하고도 청량한 가사전달과 풍부한 성량으로 부르는 선생의 동요에 반 아이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개구진 남자아이들마저 그날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섬에 사는 아이는 소라를 분다.
바다바람 막아섰는 돌각담 아래
조개껍질 게딱지로 소꿉질 하는
섬에 사는 아이가 배워온 노래.
쉬는 시간에 담임의 노래솜씨가 단연 화제였는데, 따귀는 때리지만 노래는 진짜 잘하는 능력자로 격상했고 두려움도 조금은 가시게 되었다. 노래 더 해달라고 하면 한곡 정도는 또 해주곤 했던거 보면 본인 노래실력에 꽤 자신있었던 사람같고 찬송 잘하는 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때의 그 기억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서 소라피리라는 동요는 여전히 생생하다.
찾아봐도 잘 안나오는거 보면 확실히 잘 알려진 동요는 아닌거 같다.
오르간 소리에 실리는 그날의 낭랑한 담임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돈다. 아마 이제는 우리 부모님만큼 늙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