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밥

by 따따따

꽤 예전에 할머니가 좀 더 기력이 성했고 내가 어렸을때.

처가 가기 싫어 죽는 아버지 끼고서 엄마까지 외갓집에 가고 나면 나는 할머니와 명절 나물로 나물밥을 해먹었다.

그게 뭐 별건 아니고 냄비에 밥과 나물을 넣어 약간 눋도록 따스하게 비벼서 먹는거다. 정말 별 것 없다.

우리집은 항상 명절 나물을 전날에 해서 먹을땐 차가울 수 밖에 없는데 엄마가 없으면 할머니는 꼭 그렇게 따스한 나물밥을 해주었다. 엄마가 그런식으로 나물밥을 해먹는건 거의 보지 못했고 해준적도 없다.

할머니와 둘이 남은 명절 저녁은 항상 그 나물밥이었다.

따뜻한 나물밥은 사실 찬 나물을 먹는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할머니가 많이 늙고선 엄마가 외갓집을 가고 나면 내가 할머니에게 나물밥을 해줬던것 같다. 몇번 안했어서 퍼뜩 떠오르지 않았으나 내가 할머니의 나물밥을 먹었듯이 그렇게 따뜻한 나물밥을 내가 비벼서 함께 나눠먹었다.

현재 결혼한 후 명절에 양가에서 나물을 받으면 꼭 할머니가 해줬던것처럼 그렇게 나물밥을 해먹게 된다.

남편은 처음에 약간 잡탕스러웠는지 생소해하더니 요샌 곧잘 먹는다. 자기가 안 비벼도 되고 따스하기까지 하니까.

할머니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사소한 듯한 이런 습관은 각인되듯 남아서 똑같이 하고 있다 내가. 아주 자동이라 별 생각도 없다가 오늘 아침에 나물밥 비비면서 문득 생각했는데 이건 할머니의 명절 습관이었다.

그래도 자기 너무 잊어버리지 말라고 생각이 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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