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엄마

by 따따따

외할머니의 엄마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말 못 하는 할머니로 통했던 그 할머니는 욱짜~욱짜~하는 소리와 손짓 표정 등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외할아버지 빼곤 우리 엄마네 5남매와 외할머니 하고는 아주 대화가 잘 되었다. 사위인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마실 나가고 나면 자신의 말 못 하는 장모와 민화투를 곧잘 놓았지만 곧 투닥투닥 다투곤 했다.

서로 각자의 흉을 보곤 했는데 외할아버지는 장모가 말도 못 하면서 억지 고집만 세다고 투덜댔고, 마실 갔다 온 자신의 딸에게 말 못 하는 할머니는 사위가 머리가 나빠서 같이 화투를 못 치겠다고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곤 했다.

엄마가 얘기해 준바로는 똑똑한 사람들한테는 엄지 척하고 뒤퉁맞은 사람들한테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욕한다고 했다. 사위 욕을 할 땐 꼭 새끼손가락을 들고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의 딸인 외할머니한테 불만을 토로했다.

외할머니는 왜 또 그러냐며 지그시 자기 엄마를 달래거나 둘이 자꾸 싸우는 통에 환장하겠다며 본인도 역정을 냈다.

사위하고 만날 투닥대면서도 말 못 하는 할머니는 여름 겨울로 꼭 딸네집에 와서 한철씩 보내고 가곤 했다. 할머니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아 귀와 말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접종 하나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었을 것이다.

자기를 목 졸라 죽여버리지 이렇게 답답하게 살게 만들었냐고 자신의 엄마에게 욱짜욱짜 달려드는걸 우리 엄마가 어릴 때 본인의 외가에서 봤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였던 그 호호 늙은 할머니는 이년이 또 지랄한다이~~ 하면서 타지 사투리의 독특한 말투로 혀를 차곤 했다고 그랬다. 말 못 하는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니 행동이나 표정이 과장되어 어린 내가 보기엔 좀 생소하고 무섭기도 했는데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했다. 엄마도 본인의 외할머니가 말은 못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따스해서 어릴 때 외갓집 가면 너무나 행복했다고 그랬다. 기특하다며 궁둥이나 머리를 툭닥여주며 알 수 없는 말로 흐뭇해할 땐 못 알아들어서 웃기만 했지만 그냥 그 꼬들꼬들 마른 손의 온기가 좋았다.

말년에는 치매를 앓다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다던 엄마의 하나뿐인 외삼촌인 외아들네 집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그땐 여기저기 친척 할머니가 너무 흔했던 시절이라 그저 지나가는 할머니였을 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엄마의 외할머니이자 내 외할머니의 엄마가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건 매우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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