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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치고 가재잡고

by 따따따

고향 동네에는 아마도 산줄기에서 내려왔을 마을을 관통하는 제법 그럴싸한 시냇물이 있었다.

정말 제법 그럴싸했다.상류인 동네 위쪽으로 올라가면 시내폭은 좁아졌지만 바위도 좋고 제법 그럴듯한 시내였는데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내려갈때 볼만했다.

나중에는 하도 생활 쓰레기를 버려싸니 하수도나 다름없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거기서 빨래도 하고 애들이랑 거기서 놀고 얼음 얼면 썰매도 타고, 바로 연결된 야트막한 앞산으로 올라가서 본부놀이도 하고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은 동네구간은 전부 복개가 되서 차가 지나는 길겸 진짜 하수도가 되어 버려서 가끔 고향 가서 콘크리트에 박힌 어릴때 동네애들 북적거리며 타고 놀던 바위를 보면 찡할때도 있다.

복개를 하지 않았으면 길이 좁고 동네 위쪽으로 오르기가 힘들긴했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농사기계나 자동차 등등을 쓰니 시골에도 넓직한 길이 필요했다.

여기가 옛날엔 그런 좋은 도랑이었다는걸 이곳이 고향이 아닌 사람은 모르겠지. 별 볼일 없어보이는 바짝 마른 길가 바위가 원래는 시냇가에서 물이끼가 잘 끼어 있던 멋진 냇바위였던것도 모를테고. 시간이란건 참 재미있고 섭섭한 놈인거 같단 말이지.

5년전 89세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기 새댁이었을때 얘기를 해준적이 있다. 가로등도 물론 없었을테고 달조차 뜨지 않은 새까만 밤에 뉘집 초상집을 도와주러 가라고 해서 무서움을 꾹 누르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18세에 시집 왔으니 어린 새댁이 새까만 밤길이 얼마나 겁이 났겠는가. 할머니 설명에 따르면 시냇가 옆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갑자기 새까맣던 눈앞이 홀연히 밝아지면서 초상나서 죽었다던 그집 할마이가 눈을 똑 부라리고 생시와 다름없이 작대기를 짚고 탁탁 걸어나오는 바람에 새댁인 할머니는 너무 놀라 그만 시냇가로 떨어져서 옷을 폭 젖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렇게 새까맣던 밤길이 밝아져서 주위가 다 보였다나 어쨌다나..

그런 이야기도 다 묻고 복개된 도로 아래서 탁한채로 졸졸 흐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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