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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by 따따따

고향의 여름도 덥고 습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모처럼 티끌 하나 없는 맑은 공기의 여름 아침은 지브리 만화에 나오는 여름처럼 예뻤다.

미야자키 영감은 이런 공기의 색감까지 잡아냈구나 싶어 뜬금없는 덕후의 감탄...

땀이 뚝뚝 떨어지지만 근래 보기 드문 산과 들과 하늘과 땅에 푸르름에 어린 날의 어느 여름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고단했던 고향집도 그래도 여름은 풍요롭고 조금은 느긋했다. 스페인의 낮잠처럼 뜨거운 한낮엔 쉬어야하니까 엄마가 여름 낮만큼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린 나의 여름은 좋았다.

지금은 오히려 농사의 판도가 바뀌어 여름낮에도 늙은 부모님은 휴일도 없이 더 바쁘다. 본인들도 말씀하길 열사병 걸려 밭 한가운데 엎어져 죽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면서도 해야되니까 일한다ㄷㄷ...

더운 낮이 저물고 지극히 조용한 한밤과 새벽녘엔 단 한번의 여름도 지나친 적이 없는 고향 뒷산 소쩍새의 시간이다.

끊일듯 이어지는 호롱호롱한 소쩍의 노래는 여름밤 공기에 스미듯 번져나간다.

저 소쩍새도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고 또 살고 있구나.

뒷산의 터주신이 있다면 저 소쩍이라고 난 장담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소쩍새가 우는 소리가 이렇고 저러하면 가뭄 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언제부터 터를 잡았는진 모르지만 18세에 시집왔던 할머니의 시절부터도 저 소쩍새의 조상들은 여기 살고 있었다. 늑대도 여우도 솔개도 우리 할머니도 사라졌지만 당신만은 여전히 남아 밤하늘에 애잔하고 멋나게 노래하는 법을 배우고 또 배워 여기까지 왔구먼요 하는 실없는 생각을 새벽 4시의 고향 소쩍 노래를 들으며 해본다.

여름이 되니 괜히 또 죽은 꽃순이가 생각난다.

꽃순이가 있을땐 고영들이 다니질 못해 생쥐가 들끓었는데 꽃순이 없이 비워진 고향집 구석구석엔 고영희씨들이 팔랑팔랑 다니며 아기 고영들을 양산하고 쥐새끼는 한마리도 뵈질 않는다.

이 고영들의 오줌 냄새를 킁킁대며 발톱 소리를 내면서 꽃순이가 부산스럽게 뜨거운 바닥을 다녔었지...섭섭함을 뒤로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린 아들 킥보드를 잡아준다.

도시로 돌아오니 어제와 다름없이 재개발 지구의 건설광풍이 더없이 요란하고 텁텁하고 까만 아스팔트 공기가 또한 날 섭섭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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