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할머니의 장조림이 생각난다.
할머니의 소고기 장조림은 말린 홍고추를 띄운, 단맛이 없는 까만 조선간장에 조린 지극히 짠맛의 담백한 장조림이다.
그래도 제법 큰 살림을 살던 젊은 시절, 입 짧고 성격 까다로운 소식가이자 미식가였던 자신의 꼬장꼬장한 시아버지 입맛을 맞추었을 장조림도 그 맛이었을 것이다.
나도 딱 한번 맛보았다. 그때의 우리집이 소고기 장조림을 자주 해먹을만한 물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집은 아니었다.
달걀도 양껏 먹어본 기억이 없다. 후라이라도 나오면 오빠 언니 나 셋이서 빠르게 먹어치웠던 기억이 난다. 고학년 이후로 달걀 정도는 마음껏 먹었다.
할머니가 오빠랑 대처에 나가 오빠의 학업 뒷바라지를 하던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하도 쥐포랑 콩나물 아니면 김치만 싸주니 반 아이들이 너네집 쥐포랑 콩나물 장사하냐고 농반진반 했다는 얘기를 오빠는 성인이 되어서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사람인데 예민했던 청소년기에 상처가 많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뒷바라지에 늘 감사하지만 많은 고충도 따랐었다고,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는 돈도 없고 뭣도 없으니 자신이 양껏 뒷바라지 못하고 요새야 흔해 빠진 햄이나 소세지 심지어 달걀 한번 실컷 못 먹인 맏아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요새도 종종 그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 흉 보는겸 그리워하는 겸 이야기를 한다.
있지, 그래도 할머니는 나름대로는 미식인 장조림을 했었다.
귀한 장손만을 주겠다고 딱 한통만 만들어서 그릇에 몇 점 겨우 내놓고는 매몰찰만큼 더 내놓지도 않고 말이다.
그 후로 맛본 그 어떤 누군가의 장조림에서도 그 지극히 확고한 짠맛을 찾을 수는 없었다.
우리 엄마도 장조림은 그냥 그렇다. 재미있게도 고향 식구들 자체가 장조림을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장조림 할바엔 굽거나 끓이는 다른 조리가 더 맛있지 손만 든다고.
내가 만든건 당연히 더 맛이 없고 요샌 그냥 조금 사다먹고 마는데 단맛이 지배적이다.
남편도 조그만 우리 아들도 장조림엔 별 흥미 없고.
나만 가끔 아주 가끔 할머니의 장조림을 상기한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까만 국물에 빨간 홍고추를 띄운 장조림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