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시할머니를 뵈었다.
시집 왔을 때는 여든 일곱이셨는데 지금 아흔을 넘으셔서 그런지 아주 귀가 철벽이다.
몇해전 원래도 잘 들리질 않아 보청기를 하셨지만 불편하다며 그냥 벗고 다니시며 뭐라꼬를 연발하는 할머니께 보청기를 다시 쓰시라하니 "내 말 남한테 안 옮기고 남의 말 안 들으면 그만"이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시할머니는 배움이 없고 구태의연한 시골 노인이지만 총명하고 경우 있는 사람이라 남의 할머니라도 가끔 감탄할때가 있다.
오늘도 거의 반이상은 눈치로 웅웅 대답하신다.
우리 엄마가 돌발성 난청이라 오랜 시간 보청기 생활을 하기에 귀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에는 무의식적으로 제스처가 커지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호호 늙은 아흔 할머니 귀는 철옹성이라.
이전에도 나에겐 이미 외할아버지의 사례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꽤 일찍부터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모양이신데 다섯 되는 할배의 자식들, 맏이인 우리 엄마부터 시작하여 막내 외삼촌까지 외갓집에 전화를 걸었을때 할배가 받으면 98프로의 확률로 아이고 내 참 아부지가 받았네 하면서 끊어버렸다.
어떤날은 정말 할 수 없어서 2프로의 가능성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면 고성이 오가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난공불락의 통화가 되었다.
전화기 같은 기계음이 청력 낮은 사람들에게 듣기가 불편하다는걸 엄마를 통해 알았지만 다들 그때는 알 수가 없으니 외할아버지와의 통화는 극한의 던전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외할머니를 바꿔주는거면 그날의 통화는 성공적.
생각해보면 대면하여 대화했을 때는 그런 고성을 지를일도 없는 분이었는데, 텔레비전 음량을 100까지 올려놓고 작고 나지막한 외갓집 안방에 텔레비전 소리가 왕왕왕 울리고 있던 기억이 난다.
아흔의 시할머니를 뵙고 오는 길에 문득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겹쳐진다. 고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외갓집 동네가 멀리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