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이 설이다.
지금은 천지 눈이라곤 안오는 지형이지만 라떼만 해도 고향은 설 전후론 귀 떨어져나가게 춥고 대설주의보가 내릴만큼 무릎이 빠질 정도의 대설도 꼭 있었다.
그게 고작해야 30년전쯤 남짓한데 기후대 변화를 체감한다.
눈 오면 애들은 즐겁지 설 나는 여자들은 힘들었겠다.
강엿(강정)도 곶감도 두부도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으며 설을 났다. 두부 이야기는 예전 글에 있는데 꽤나 애증의 두부다.
가래떡도 요새는 방앗간에서 다 썰어져 나오는데 마루에다 일주일정도 떡을 말린후에 대광주리 가득 마른 가래떡을 담아 놓고 떡을 썰던 할머니와 엄마가 세밑에는 오래된 흔한 풍경이었다.
설 일주일전에 제사하고 설 쇠고 일주일 후엔 할머니 생파상을 반드시 차려야 되는 엄마는 정월대보름까지 컨디션 난조로 늘 아프고 화가 나있었다.
그 기간에 놀러오는 할머니 시누와 동서 되는 고모할머니와 큰집할머니까지 덤으로 손님도 치르고.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딱히 교양 있거나 그런 타입이 아니었는데 점잖은 시누나 부잣집 영애이자 종손며느리인 교양 넘치는 큰동서랑은 어째서인지 죽이 잘 맞아 자주 놀러 오고 가곤 했다.
며느리인 엄마가 잘 대접했기에 그런 이유도 있었을것이다.
내 유년시절 늘 이어졌던 정월 명절에 대한 간략하고 평균적인 소회다.
우리 엄마는 칠순인 지금도 이 시즌엔 기분이 좋지 못하다.
그건 그냥 PTSD라고 해야될까.
올해는 아빠가 밭에서 전정하다 골절상을 당해서 더 기분이 안좋아있다. 기동력이 그나마 제 역할을 다 하질 못하니.
제사도 해야되고(여든 다된 엄마의 시누가 여적지 제사에 참여하는데 엄마와 그의 손위시누는 서로 그렇게 살갑지만은 않다. 나도 시누지만 시누와 살갑다니 소름이기도 하고ㅎㅎ)설도 해야되고 시어머니 생일파티야 없지만 골절환자의 시중을 들어야하고 기분이 몹시 안좋은 상태라 설에 방문하면 분명 화가 쌓여 있으리라.
이제는 기분 좋게 다같이 소고기나 먹으며 릴렉스하게 보내도 될 명절인데 안쓰럽다. 이렇게 말했다간 엄마의 엄청난 포화가 쏟아져올것이다. 지난날 보냈던 수많은 설날의 지난함에 대한 고단과 분노와 원망의.
그렇지만 시대는 바뀌고 젊은 자식들은 심플함이 좋은걸 어쩌겠는가.
시가는 추석엔 각자 쉬고 설엔 내가 총대를 멘다.
시고모 말에 따르면 나는 쫄병인데 정말 좋지 못한 단어 선택에 미간이 찌푸려져 차라리 홀로 가는 소가 되기로 했다.
무소 아니고 그냥 소다.
하지만 나는 간섭하는 이 없이 맘대로 지지고 끓이니 스트레스는 그다지 없다. 기름냄새가 짜증스러울 뿐이지.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다시다도 쓰고 기름도 듬뿍 쓴다.
여기까지 썼는데도 남자 이야기라곤 다리 다친 우리 아빠 얘기 뿐이니 적어도 내 고향과 시가의 명절은 여전히 여자만의 것이다.
물론 우리 오빠는 노모와 아내의 명절권익보호에 대단히 힘쓰는 중이다.
우리 남편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지랄염천을 떨어도 설에는 모두 수긍해주는 것에 의의를 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