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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by 따따따

꽤 오래된 기억속에 엄마하고 고모의 손을 잡고 고향 인근의 큰 절인 운문사 솔길을 걸어나왔던 장면이 하나 남아 있다.

그때는 젊었던 고모가 빠삐코인가 쭈쭈바 하나도 사주고 비가 그친 절 길을 내려오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정확한 기억인지조차 가물거리게 30년은 가뿐히 지난 기억이지만 분명 비가 그친 부처님 오신날이었고 쭈쭈바 먹었다는게 팩트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친하지 않은 고향의 내 고모는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에 해당되는 사람인데 그날은 어찌 그리 손을 잡고 내려온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모도 고향집에서 다니는 청신암의 신자였다.

매우 독실하며 신실한 신도였다.

달갑잖은 손윗시누지만 엄마도 그것만은 담백하게 인정했다. 고모는 훌륭한 불자였음을.

고모는 지금은 매우 신실한 가톨릭 신자다.

딸들을 따라 개종하였다. 총명한 그도 옛날 사람이기에 아들이 없는 자신 사후에 딸들이 편하도록 그리했을 것이라고 엄마의 뇌피셜이다.

매우 신실한 불자였기에 매우 신실한 가톨릭신자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깊은 신념은 어디에나 통용된다.

아버지의 누나이니 그만큼 세대의 갭이 많이 나는 고모를 좋아해 본 적이 없는데 그 신념만큼은 좋아한다.

청상으로 딸 넷을 장사로 키워내며 꽤 고운 외모와는 달리 깔깔한 성미이지만 매사에 셈이 정확하고 자신의 삶에 한 점 의심이 없는 사람만이 그런 완벽에 가까운 신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편협하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절에 다녀갈때 스님께 자초지종을 말하고 스님 저는 이제 성당에 갑니다 라고 말했다는데서 딱 한번 멋진 사람이구나를 느꼈달까.

부처님 오신날이면 나는 어린날의 쭈쭈바와 함께 고모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고향집 할머니의 친정엔 대처승이 계셨는지 절이 있었다. 나중엔 청신암만 다니지만 할머니가 좀 더 젊었던 때는 가끔 할머니 친정 절에 나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던가보다.

맛있는 공양물 떡이나 과자 같은것을 내주셔서 그런거 먹었던것 같다. 맛있어서 좋았다.

어린날의 내 기억속에는 먹는게 모든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절에서 내려와 대로변에 나왔는데 맞은편에 엄마가 와있었던가 보다. 그땐 내가 실로 내 아들같은 미친 미취학아동이어서 무조건 엄마만 보고 엄마! 하면서 달려나가다 차밑에 깔렸다고 한다.

운전자는 부처님 오신날 무슨 봉변이었던가.

엄마말론 내가 완전 웅크리고 있어서 전혀 다치질 않았다고 했다. 매우 어렴풋하게 쌍코피가 났던것 같긴 하다.

그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운전자의 스킬이었던지.

그 일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해도 좋을만큼인데 어떤 엷은 뉘앙스는 떠오르긴 한다.

그때부터 나의 총명함이 몽땅 사라졌다는 그런 일은 없고 그때나 지금이나 입만 까진 계집아이는 사십년이 넘도록 평범히 살아서 여기까지 와서 부처님 오신 날의 소회를 이야기한다.

올해도 고향의 절과 시가의 절엔 인세의 욕망을 담은 내 가족의 등이 한 해 빛나고 있을것이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부처님 오신 날에 고향의 청신암에 함께 인사를 드리는 상상을 한다. 거기야말로 스님 다실에 진짜 커다랗고 말쑥한 니양이가 있는데 우리 아들 그것도 모르고 도망가기 바쁘지.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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